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자산 5조원 이상 47개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현황을 발표했다. 대기업총수 일가가 이사로 등재한 회사의 비율(22.8%)이 작년(26.2%)보다 줄었고, 총수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8.5%)도 지난해 보다 2.5%포인트 감소했다. 대기업 회장의 잇따른 구속이라는 특수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총수의 이사 등재가 10곳 가운데 한 곳도 제대로 안 되는 셈이다. 총수 및 그 일가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 ‘책임과 권한의 괴리’ 현상이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삼성, SK, 현대중공업, 한화, 두산, 신세계, LS, 대림, 태광, 이랜드, 하이트진로, 한솔 등 12개 기업집단의 총수는 계열사 이사로 전혀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사회 내 사외이사의 비중은 늘었지만 이들이 거수기 노릇을 하는 상황도 여전했다. 이들이 부결시킨 안건은 단 3건(0.05%)으로 지난해(0.37%)보다 더 심했다. 또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 이사회 내에 설치된 각종 위원회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총수 일가가 경영을 제대로 못하거나 사익을 추구하더라도 이를 견제할 확실한 세력이 없는 셈이다.
물론 오너 중심의 독단적 지배구조가 모두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한국경제의 성공을 무소불위의 권한을 지닌 오너경영 체제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일부 대기업들이 신속한 경영판단과 단호한 투자결정으로 성공신화를 써 온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갈수록 복잡해지는 국내외 경제상황을 볼 때 이 같은 방식은 더 큰 리스크를 안을 수 밖에 없다. 총수의 의사결정에 대한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총수 한 사람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의 절대적 비중을 생각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한국 경제는 지금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내수는 장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두드러진 가운데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과 미국 일본 등 선진기업의 견제로 기업의 실적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 기업들이 인수ㆍ합병(M&A) 및 사업부 매각을 통한 선택과 집중, 선제적 사업재편 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의 성장동력까지 발굴해야 하는 시점이다.
선제적 구조조정이 절실한 중대한 시기에는 신속한 결단 못지 않게 합리적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때문에 대기업 스스로 지금의 지배구조가 최선인지 진지하게 자문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특히 총수가 직접 이사로 등재하는 책임경영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당면한 위기를 돌파할 필요가 있다. 지배구조 및 경영방식을 글로벌 수준에 맞추려는 재계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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