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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코미디언 빌 코스비, 성폭행 추문에 무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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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코미디언 빌 코스비, 성폭행 추문에 무너지다

입력
2014.11.2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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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드러낸 피해자들… 슈퍼스타 권력 피해 숨었지만 SNS 이용해 잇따라 증언

퍼지는 코스비 거부 움직임… 77살 생일 특집도 방영 취소

빌 코스비가 21일 미국 플로리다주 멜버른 맥스웰킹센터에서 공연을 시작하기 전 청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무대 앞으로 입장하고 있다.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수가 늘어나면서 네바다주 등 5개 주에서 예정된 코스비 공연은 취소됐다. 플로리다=AP 연합뉴스
빌 코스비가 21일 미국 플로리다주 멜버른 맥스웰킹센터에서 공연을 시작하기 전 청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무대 앞으로 입장하고 있다.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수가 늘어나면서 네바다주 등 5개 주에서 예정된 코스비 공연은 취소됐다. 플로리다=AP 연합뉴스

미국 코미디언 빌 코스비(77)는 전설이다. 특히 흑인들에게는 전설 이상의 존재다. 피부색을 넘어 존경할만한 사회 원로로서의 요소를 대부분 갖췄다. 삶 자체가 경외를 부른다. 입지전적이다. 코미디 연기를 하기 위해 템플대학을 중퇴했다. 1965년 TV드라마‘나, 스파이’에 출연했다. 흑인으로서는 처음 전국 방송 드라마의 주연을 꿰찼다. 곧바로 대중의 별이 되었다. ‘나, 스파이’로 3년 연속 에미상 최우수남자주연상을 안았다. 흑인 최초였다. 인종갈등이 흑백논리처럼 명확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미국 남부에선 ‘나, 스파이’의 방송이 금지됐다. 그의 성공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코스비의 성공 시대는 닫힐 새가 없었다. 화면과 무대를 가리지 않고 코미디로 미국 국민을 웃기며 1970년대를 보냈다. 1984년 첫 전파를 탄 ‘코스비 가족’이 이력의 정점이었다. 8년 동안 방영된 이 시트콤은 지적이면서도 가정적이고 다정한 코스비의 이미지를 다졌다. 미국의 이상적인 아버지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한국 등 외국에서도 많은 시청자들이 ‘코스비 가족’을 통해 흑인에 대한 편견을 깼다.

화면과 무대 밖 삶도 갈채를 받았다. 대중을 웃기느라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1977년 명문 암허스트대학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명예박사학위도 숱하다. 명성으로 끌어 모은 돈을 자기 배에만 채우지 않았다. 기부 활동도 왕성했다.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세워 장학사업을 펼쳐왔다. 흑인여성대학 스펠먼대학에 2,000만달러(약 220억원)를 기부하며 흑인으로선 사상 최고액을 사회에 내놓은 인물이 됐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메달도 받았다.

지성을 갖춘 흑인으로 현대 미국의 아버지 상을 대변했던 코스비가 요즘 미국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래 전 그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인들의 증언이 잇따르면서 살아있는 전설이 무너지고 있다.

증언은 코스비의 악랄한 이면을 드러낸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흠집을 낼 정도를 넘어선다. 코스비라는, 50년 동안 형성된 신화를 해체할 정도다. 피해를 주장하는 16명 중 12명이 코스비가 음료에 약을 탄 뒤 몹쓸 짓을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코스비가 약을 먹이려 시도했다고 밝혔다. 범행은 코스비가 소유한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운전사 딸린 리무진 안, 고급 호텔 등에서 발생했다. 백인에 예쁘고 어린 스타 지망생. 피해 여성들의 공통점이다.

코스비의 대리인들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증언에 나선 여성들에게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고 언론들의 득달 같은 보도행태를 비난하고 있다. 일군의 여성과 언론이 느닷없이 코스비 죽이기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코스비의 변호사 마틴 싱어는 “최근 새로 나온 주장들은 구체적이지 않고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에 불과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30~50년 전 발생한 일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해왔다는 것부터 비논리적”이라고 성명서를 통해 밝혔다. 코스비도 부인 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코스비는 최근 플로리다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빈정거림에 대해 대답해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코스비의 성폭행 의혹은 오래 전 제기됐다. 2005년 안드레아 코스탄드가 첫 소송을 건 뒤 간간히 불거져 왔으나 조명을 받진 못했다. 의혹은 최근 구체화됐고 세인의 관심도 다르다. 모델 출신 바버라 보먼(47)은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10대 시절 배우 지망생인 나에게 약을 먹여 수 차례 성폭행했다”고 밝히면서 의혹은 사실로 진화하고 있다. 슈퍼모델 출신 재니스 디킨슨(59)과 간호사 테레사 세락니즈(57)도 코스비의 범행을 폭로하고 나서면서 코스비를 궁지에 몰고 있다.

코스비의 범행을 폭로한 슈퍼모델 출신 재니스 디킨슨(왼쪽)과 간호사 테레사 세락니즈.
코스비의 범행을 폭로한 슈퍼모델 출신 재니스 디킨슨(왼쪽)과 간호사 테레사 세락니즈.

피해자들은 명성으로 구축된 코스비의 연예권력이 무서워 피해 사실을 못 밝혔다고 주장한다. 보잘것없는 약자의 말보다 힘센 유명인의 발언에 더 힘을 실어주는 세태와 기성 언론의 행태도 입을 막았다고 덧붙인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피해 여성들이 뒤늦게나마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성폭행 추문은 코스비의 박사 학위 취득도 도마에 올렸다. 코스비는 성적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 해군에 입대했다. 해군 경력에 기대 템플대학 입학이 가능했고 대학 중퇴에도 불구하고 직업적 성취를 인정받아 졸업장을 쥐었다. 박사과정을 밟을 때는 촬영에 전념하느라 강의를 거의 듣지 못했다. 학문적 배경도 없이 유명세를 지렛대로 박사학위까지 거머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미국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

추문이 확산되자 코스비 거부 움직임도 퍼지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하이 포인트 대학은 추문이 일자 자문위원회 명단에서 코스비의 이름을 지웠다. 버클리음악대학은 코스비 이름으로 수여되던 온라인 장학금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지난주 NBC방송은 코스비 주연의 코미디 연속극 기획을 취소했다. 온라인 방송사 넷플릭스는 코스비의 77번째 생일을 맞아 제작한 ‘빌 코스비 77’을 방송하지 않기로 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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