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봉ㆍ비로봉ㆍ국망봉을 중심으로
산 중턱을 휘감는 총 143km코스
"음이온 배출량 많고 산삼도 유명
옛부터 사람 살리는 산으로 불려"
‘소백산은 수많은 바위가 골짜기 낮은 곳에 있고, 산허리 위로는 돌이 없으므로 비록 산이 웅장하여도 살기(殺氣)가 적다. 멀리서 바라보면 봉우리가 첩첩이 솟아나지 않고 엉기어 있는 듯 하다. 구름은 흐르는 물같이 뻗어 하늘에 닿아 북쪽을 막았는데, 때로는 붉은 노을 흰구름이 뜨기도 한다. 옛날 술사(예언가) 남사고는 소백산을 보고 문득 말에서 내려 절하면서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라고 했고, “피란에 첫째 가는 땅이다”고 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소백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고 어머니 품과 같은 산이다. 조선의 유명한 참서(讖書) 가운데 하나인 ‘정감록’에는 소백산 아래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를 재앙을 막아 주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으뜸으로 꼽았다. 특별한 향기와 풍미로 해마다 임금님 수랏상에 올랐던 산나물이며, 효력이 월등한 약재와 풍기인삼이 소백산에서 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퇴계 이황도 명종 4년인 1549년 4월 4일간 죽계계곡∼초암사∼석륜사∼비로사∼풍기를 돌아보고 ‘유소백산록’( 遊小白山錄)을 남겼다.
(사)영주문화연구회 소백산자락길위원회 배용호(63ㆍ전 영주교육장) 위원장은 “과학적으로도 소백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고 주장한다. 배 위원장은 “2011년 충북대에 의뢰해 소백산 초암사∼죽계구곡 구간을 공기이온측정기로 음이온을 측정한 결과 일반 도시에 비해 22배∼60배, 깊은 산속의 6배 가량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계곡에서는 음이온이 1cc당 4,400개 정도였으나 폭포 주변에서는 최고 1만2,000개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도시에서는 200, 산 속 700, 바닷가와 깊은 산속에서는 1,500개 정도 생긴다. 그는 “소백산은 온대와 냉대의 경계선에 있어 다양한 식생분포를 보인다”며 “‘사람 살리는 산’이라는 옛말과 과학적 근거 등이 뒷받침하는 소백산은 생태치유의 산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백산을 휘감아 걷는 아름다운 길이 생겨났다. 이름은 소백산 자락길. 소백산 연화봉과 비로봉, 국망봉을 중심으로 산 정상 아래 중턱을 한 바퀴 휘감아 도는 총 143㎞ 코스다. 영주시 풍기읍과 순흥면 단산면 부석면, 봉화군 물야면, 충북 단양군의 영춘면에 걸쳐있다. 어머니의 넉넉한 마음을 담은 12폭 치맛자락처럼 12자락으로 나눠 걸을 수 있도록 구간을 정했다.
대표 구간은 1자락이다. 유소백산록을 모티브로 조성된 1자락은 퇴계의 발자취를 대부분 따랐다. 1자락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에서 출발한다. 죽계구곡의 1곡이기도 하다. 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 안향을 배향하는 사묘(祠廟)로 설립했다가 중종 38년(1543년)에 유생교육을 겸한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시초가 됐다.
서원 앞 마을로 들어서면 순흥 유배 중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화를 당한 금성대군의 넋을 기리는 금성대군신단이 있다. 금성은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자 세조의 아우이며 단종의 숙부다.
신단 뒤에는 순흥 압각수라는 은행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1,200년에 이른다. 경북도 보호수 46호다. 이 은행나무는 단종복위운동의 실패로 순흥도호부가 초토화되면서 불에 타 죽었다가 순흥부가 복설된 후 밑둥치에서 새로운 가지와 잎이 돋아났다고 전해진다.
압각수를 지나 계곡을 따라 700m쯤 걸으면 순흥향교로 들어가는 언덕길에 다다른다. 도문화재자료 347호로 지정된 순흥향교는 원래 순흥부 북쪽 금성에 있었으나 순흥부 폐부 때 헐렸다가 179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40여 분 죽계구곡을 따라 걸으면 세 그루의 큰 느티나무(삼괴정)가 선 배점마을에 도착한다. 이 마을에는 대장간을 하던 배순이라는 대장장이가 있었는데 퇴계 선생이 소수서원에서 강학할 때 강학당 밖에서 엿듣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퇴계가 제자로 거뒀다. 그는 부모와 퇴계, 선조가 죽자 그 때마다 3년 상복을 입고 제사를 지냈다. 마을에는 배순을 기리는 정려비가 있으며, ‘78세에 생을 마치는 날 맑은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리고 뜰에 까마귀 떼가 내려왔다’고 적혀 있다.
배점에서 초암사까지는 죽계구곡의 맑고 청아한 물소리를 곁에 두고 걷는다. 조선의 많은 선비들은 이곳을 성리학의 성지처럼 여겼다고 한다. 초암사는 의상대사가 부석사 터를 보러 다닐 때 초막을 짓고 기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초암사에서 한 숨을 돌리고 우거진 산 숲길로 접어들면 싱그러운 솔향기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소백산 일대 영주시 봉현면과 예천군 상리면에는 국내 최대의 산림휴양치유단지가 들어선다. 장욱현 영주시장은 “음이온이 최고 수준으로 방출되는 영주를 최고의 힐링 및 휴양도시로 만들겠다”며 시정구호를 아예 ‘힐링도시 영주’로 정했다.
이 산길은 달밭골로 향한다. 2㎞ 가량의 계곡을 낀 산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영혼까지 맑게 하는 물 새 바람소리가 발길마다 따라 다닌다. 달밭길의 ‘달’은 산의 고어, 즉 달밭은 산에 있는 밭을 일컫는다.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고 살았을 뿐 외지인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다.
달밭골을 내려오면 소백산 비로봉 남쪽 기슭의 신라고찰 비로사가 나타난다.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진공대사가 931년 중건한 이 사찰에는 보물 996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경북도 유형문화재 4호 진공대사보법비탑과 7호인 석조당간지주가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비로사 적광전 앞 탑 바닥면의 연화문배례석이다. 궁예의 신하였던 왕건이 비로사를 찾았을 때 진공대사가 왕건이 왕이 될 것을 예측했다고 한다. 왕건은 이 일을 잊지 않고 왕이 된 후 비로사를 다시 찾아 연화문배례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소백산 1자락길은 비로사 아래로 내려오면서 끝난다. 국립공원소백산사무소가 운영하는 삼가야영장과 소백산자락길 홍보관이 있고, 홍보관에는 해설사가 상주해 자락길을 안내한다.
소백산자락길은 모두 계곡을 끼고 있다. 2자락에서는 소백산 맑은 물을 담은 금계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십승지의 으뜸인 금계마을의 풍수지리를 감상할 수 있다. 3자락은 중앙선 기차가 죽령을 지나 정차하는 소백산역(구 희방사역)에서 시작해 죽령마루까지 이어지는 죽령옛길이다. 옛날 수 많은 선비와 보부상들이 이 길로 한양을 다녔다.
4∼7자락은 충북 단양군의 노동동굴과 보발재, 온달산성 등을 감상할 수 있고, 8자락에서는 마흘천과 현정사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9자락에서는 잣나무숲과 화전민집터, 낙동강 발원지, 산머루주 공장, 보부상 위령비 등을 차례로 만날 수 있고 10자락은 천연고찰 부석사에서 일몰을 감상하는 행운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11자락은 댐과 오지마을 풍경을 감상하다 사과따기 체험도 즐길 수 있고, 12자락은 금성대군의 전설을 간직한 두레골 서낭당과 배순의 대장간터, 정려비를 만날 수 있다. 12자락은 다시 1자락으로 이어진다.
영주시 인삼박물관 금창헌(50ㆍ학예연구사) 관장은 “소백산은 산세가 안온하고 여성스러우며 풍수지리적으로 길지인 데다 산삼이 많이 자생, 사람을 살리는 산으로 불린 듯 하다”고 말했다.
소백산자락길은 2010년 환경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 선정한 생태관광 10대 모델사업으로 추진됐다. 2011년 전국 10대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됐고, 올해 한국생태관광협회로부터 한국생태관광인증서를 받았다.
영주=이용호기자 ly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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