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진행될 때마다 무대가 기운다. 관객석 기준으로 무대의 오른쪽이 점점 위로 향한다. 4막 시작과 동시에 무대는 10도까지 기울어진다. 전막과 비교해 오른쪽 무대가 90㎝정도 올라가 배우들이 걷기 힘들 정도다.
‘현대극의 아버지’인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의 1877년 작 ‘사회의 기둥들’이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 위에 독특하게 구현됐다. 1막부터 이미 무대의 오른쪽이 30㎝ 올라간 형태로 시작하는 연극은 2막 시작 동시에 30㎝, 3막 시작 후 다시 30㎝가 더 올라간다. 4막 시작과 함께 90㎝가 더 올라간 무대는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할 때에도 다시 원상태로 내려오지 않는다.
이 같은 무대연출은 연극의 주제의식을 상징하는 도구다. 극은 노르웨이의 소도시에서 자타공인 ‘사회의 기둥’이라 불리며 시민의 존경을 받는 주인공 카르스텐 베르니크의 위선과 욕심에 대해 탐구한다. 베르니크는 15년 전 자신 대신 기꺼이 불륜 스캔들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미국으로 떠났던 처남 요한 퇴네센이 노르웨이로 돌아오면서부터 불안감에 시달린다. 관객은 요한의 등장으로 베르니크의 추악한 과거를 서서히 알게 되고 급기야 조선소를 운영하는 베르니크는 요한이 미국으로 돌아갈 배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출항을 강행하게 한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베르니크의 추악한 내면을 보지 못한 채 여전히 그를 존경한다.
극 내내 기울어진 무대는 이 같은 추악한 인간 내면과 병든 사회를 상징한다. 김광보 연출은 “좁게는 개인, 넓게는 사회와 국가가 침몰해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라며 “극 초반 무대 중앙에 자리잡았던 흰 식탁이 기울기에 맞춰 점점 아래로 흘러내리듯 이동하는 것 역시 내부에 발생하는 변화의 조짐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구성원들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라고 밝혔다.
극은 베르니크가 자신의 과거를 시민들에게 고백하며 끝난다. 그렇다고 해피엔딩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무대인사가 끝날 때까지 기울어져 있는 무대를 보면, 베르니크의 고백이 한 순간의 처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30일까지 공연.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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