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요건 완화에선 한발 뺐지만 "보호막 과도…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청년실업 문제 해소 명분, 큰 틀 맞더라도 고용불안 우려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막을 걷어 내겠다는 정부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실무 국장이 ‘해고 요건 완화’라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민감한 카드를 내보였다가 거둬들인 직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보다 완화되긴 했지만 포괄적인 ‘정규직 보호 완화’를 노동 개혁의 핵심으로 지목하고 나섰다. 그 해법 중 하나로 임금체계 개편을 제시했다. 양적(해고 요건 완화) 질적(임금체계 개편) 투 트랙 방향을 설정하고 여론과 줄 다리기에 나선 것으로 보이지만, 논리적 함정의 덫이 꽤 깊어 보인다.
최 부총리는 25일 출입기자단 정책세미나에서 작심한 듯 정규직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정규직을 한번 뽑으면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고 임금피크제도 잘 안 된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서 인력을 못 뽑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정규직에 대한 해고 요건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던 실무 국장의 전날 발언(본보 25일자 17면)에 대해서는 일단 한 발 물러섰다. “해고를 쉽게 하기보다는 임금체계를 바꾸는 등 여러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애드벌룬을 띄워본 뒤 여론 반발이 거세지자 살짝 발을 빼는 모습이지만, 지금보다 정규직 해고가 쉬워야 한다는 인식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법적 요건 강화는 필요하지만, 능력 등을 감안해 특정 인원을 해고하는 개별해고는 좀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완화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해고와 임금, 투 트랙으로 노동 개혁의 방향을 잡고 있다는 얘기다.
고임금, 비정규직 진입 차단 등의 정규직 보호 장치가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다소 경직된 구조인 걸 감안하면 어떤 식으로든 관련 논의는 필요한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 직장(제조업)에서 30년 근무한 사람의 인건비는 신입직원의 2.8배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약 1.5배)의 두 배에 육박하는 게 현실이다. 정규직이 누리는 과보호를 조금 덜어내면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고, 또 해고가 쉬워진 만큼 고용이 늘어난다면 청년층 실업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는 최 부총리의 생각이 타당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노동개혁은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는데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성을 위해서도 정규직이 기득권을 좀 내려놔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나눠먹기 식 해법이 근로기준법 등 법적, 제도적 손질로 이어질 경우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 정규직들이 직격탄을 맞을 소지가 다분하다. 고용 증가나 비정규직 처우 개선, 가계소득 증대 등의 낙수 효과로 이어지지 않고, 부작용과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킬 소지도 다분하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는 “고용 불안으로 가계소득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가계소득을 늘린다는 정부 방침과도 배치된다”고 지적했고,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정규직의 지위가 불안정해지는 반면, 비정규직의 처우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일방통행 식 행보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많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ㆍ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성공사례로 꼽히는 독일은 노사정이 긴 시간을 두고 꾸준히 논의해 대타협을 이뤘다”라며 “민감한 해고 문제를 먼저 흘리는 등 정부의 일방적인 무리수가 오히려 논의 자체를 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세종=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세종=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