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30 세상보기] 터널 끝에 빛

입력
2014.11.26 20:00
0 0

지금까지 다섯 장의 음반을 만들었고, 그 중 세 번째 음반까지는 일본에서 제작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시작한 음반 작업, 당연히 늘 어려웠다. 섬세하게 소리를 만들어야 하고, 음정 역시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정확해야 했다. 날카로운 소리가 섞여 있는 해금 음색을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려고 했다. 공연에서는 매력으로 느껴지는 ‘날 선 소리’가 음반이나 라디오를 통해 들으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주 약한 호흡까지도 조절했다. 해금의 활은 말도 못하게 예민했다. 녹음하기 전에는 잘 못 느꼈던 작은 부분이 녹음해 놓고 보면 커다란 결점이 되는 것 같았다.

좁은 녹음실에서 항상 외로웠다. 하루에 10시간씩 녹음실에 앉아 있기도 했고,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로 프로듀서와 소통해야 했다. 가끔은 “이 정도면 괜찮잖아!” 라고 외치고 뛰어 나가고 싶었다. 녹음하는 내내 긴 긴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빛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확신이 들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부딪혔다. 매일매일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다. 자기 전에는 어딘가가 아팠다. 누가 등을 한번 두드려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벽 모서리에 대고 꾹 눌러 보았다. 불면증이 심해서 새벽 4, 5시가 돼야 간신히 잠들었다. 9시에는 일어나서 무거운 몸과 마음을 추슬러 녹음실에 갔다.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때 느낀 압박감을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다. 정말 잘 하고 싶었다.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로듀서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의 음반을 좋아했었는데, 나의 음반을 만들어 주게 되다니! 영광이었고, 그래서 더 긴장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으로 알던 그 분은 예리하고,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었는데 실제로 만나니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성격이었다. 커다란 안경을 쓰고, 발걸음이 어수룩했다. 매일 손에는 작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는데 거기엔 맥주 한 캔이 들어있었다. 내가 녹음실 안에서 헤매고 있으면, “난 맥주 마신다~”면서 나를 자극했다. 그러면 딱딱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도 같았다.

녹음이 잘 안 되던 즈음이었다. 스트레스와 자책감에 나는 점점 마르고, 지쳐갔다. 밝게 웃지 못했고, 기운이 없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프로듀서의 책상에는 맥주 한 캔이 놓여 있었고, 나는 천근만근같은 녹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내 의자에 뭔가 올려져 있는 것이다. 작은 꾸러미. 그 안에는 프라모델이 들어있었다. 간단하게 조립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그걸 보자 마자 뜯어서 조립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걸 맞추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녹음실 구석에 앉아 그걸 맞추는 동안 만큼은 음악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주하지 않고, 놀았기 때문일까? 그날 우리는 놀았다. 녹음실 안에서 다 맥주를 마셨다. 프로듀서, 엔지니어, 디렉터… 함께 둘러 앉아서 좋아하는 캐릭터나 만화영화 이야기를 했다. 점심에는 늘 먹던 도시락이 아니라 초밥을 시켜 먹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많이 웃었고, 부족한 일본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다음날, 녹음실 문은 가볍게 열렸다. 연주하는 것도 훨씬 차분해졌다. 중압감에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져 있던 활도 가벼워졌다. ‘잘해야 한다’가 아닌 ‘즐겁게 하자’가 되어있었다.

또 새로운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언제 끝날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준비하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이랬다 저랬다 변덕부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논다. 이 과정이 즐겁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천천히 가면 된다. 혼자 걷는 길이 아니다. 전에는 몰랐던 것 같다. 녹음실이 외로운 곳이었고,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을 누군가와 나누지 못했다.

지금은 행복하다. 그 때 느낀 터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터널을 혼자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터널 끝에 빛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괜찮다. 지금은 깜깜해도 빛을 향해 걷고 있으니까!

꽃별 해금연주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