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차 유엔총회에서 북한 최고위층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할 것을 권고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2005년부터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됐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예년에 비해 더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를 ICC에 ‘표적제재’한다는 내용이 들어감으로써 북한 각계와 인민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결의안을 채택하는데 주도적으로 나섰던 미국, 일본, 한국 등에 “미증유의 초강경대응전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나섰다. 북한은 “최고존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운명의 전부”라고 하면서 인권결의안에 맞서 “새로운 핵실험”을 거론하며 초강경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은 수령중심의 유일체제를 확립하고 수령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범죄로 다룬다. 무오류성이 보장된 수령을 인권유린 범죄자로 ICC에 제소한다고 하니 외부를 향해서 핵전쟁을 언급하고 내부적으로는 ‘군민결의대회’를 개최하는 등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그 동안 미국은 핵문제와 인권문제를 ‘북한문제’ 범주에 묶어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이 제기하는 핵과 인권문제를 “고립압살정책의 두 개의 기둥”이라고 주장하면서 강하게 반발해왔다. 북한은 생존권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핵을 개발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북한은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이번에는 유엔의 인권문제 제기에 맞서 핵전쟁으로 맞서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예년과 달리 올해 북한은 인권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보였다. 올해 처음으로 인권보고서를 발표하고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을 방문해 적극적인 인권대화를 시도했다. 억류 미국인들을 석방하고 인권분야에서 외부 관련기구와의 협력의지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지도자까지 ICC에 제소하는 등 예년보다 강한 인권결의안이 통과됨으로써 북한은 관련국의 의도를 의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그들의 권위를 훼손하고 사회주의 제도를 붕괴시키기 위해 인권결의를 ‘작당한 것’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징벌’을 공언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세계가 올해 북한 인권문제의 압박 강도를 높인 데는 북핵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는데 대한 강경대응일 가능성이 높다. 제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핵무력건설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을 고수하면서 핵개발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 제재효과도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서방세계가 빼든 또 다른 채찍이 김정은 제1비서를 직접 겨냥한 인권결의다. 이에 맞서 북한이 4차 핵실험 가능성을 내비쳤다. 마치 9ㆍ19 공동성명 채택 직후 미국이 김정일 정권의 통치자금줄을 차단하는 금융제재를 가하자 1차 핵실험으로 맞섰듯이, 김정은이 인권개선을 위한 의지를 보인 직후 유엔이 인권유린 범죄인으로 몰아붙이자 또다시 핵실험과 핵전쟁카드를 내밀고 외부세계의 인권압력 공세에 맞서려 한다.
국제사회가 보인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 우리 국회에서도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입법을 여야가 각각 추진하고 있다. 인류보편적 가치 실현차원의 북한인권법 제정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국회에서 북한인권 관련법을 제정하려면 여야 합의로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북한 붕괴를 목표로 한 북한인권법을 제정할 경우 북한의 반발을 불러와 남북관계 복원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 당시 북한이 크게 반발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우리 정부도 북한인권법을 만들어야 한다면 남북한 주민모두의 생존권과 자유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인권법을 만들고 남북관계를 조속히 복원해야 할 것이다. 북한인권 개선은 외부 압력도 중요하지만 내부 동력도 중요하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전략적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인도적 지원사업을 북한 인권개선과 연계해 확대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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