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내년도 예산안 및 부수법안 심의 시한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어제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지원) 예산과 관련한 합의를 새누리당이 연거푸 번복했다”며 의사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또 국회의장이 지정한 세입예산안 부수법안에 담뱃값 인상 관련 지방세법 개정안이 포함된 것도 여당의 일방통행인만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타협 노력은 않고 ‘할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시간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예산안 자동ㆍ단독처리까지 염두에 둔 배짱이겠지만, 자칫 큰 역풍을 초래할 악수(惡手)가 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 국회 일정이 모두 중단되는 파행이 빚어져도 내년도 예산안과 부수법안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심의 시한인 오는 30일을 넘기면 다음달 1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돼 여당의 단독처리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과거의 ‘날치기 소동’ 없이도 예산안이 처리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걸 믿고 여당이 비타협적 태도만을 고집하는 건 옳지 않다. 누리과정 합의에 대한 잇단 번복 책임도 있지만, 부자증세 없이 담뱃값 같은 서민증세만 추진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야당의 주장에는 결코 무시돼선 안 되는 국민적 반감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지금이라도 쟁점인 누리과정 예산과 담뱃값 인상 관련 법안 처리에 대한 타협에 나설 경우, 당장 정략적 계산부터 배제해야 한다. 누리과정 예산은 상임위 차원에서 사실상 지원액을 확정해 예결위에 올리자는 야당의 주장이나, 아예 지원액을 정하지 않고 예결위에 올리자는 여당의 주장 모두 무리가 있다. 국회운영 원칙에 따르면 일단 상임위에선 지원액 규모를 정해서 올리는 게 맞고, 예결위에선 전체 예산의 틀에서 상임위 지원액에 대한 조정이 이루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여당은 상임위 차원의 지원액을 정하는 데 동의하고, 야당은 예결위 차원의 액수 조정을 용납하는 걸 전제로 타협점이 마련돼야 한다.
정부ㆍ여당이 부자증세는 외면한 채 담뱃값이나 주민세, 자동차세 같은 사실상의 서민증세만 추진하는 건 공평과세 차원에서도 분명한 잘못이다. 국회의장이 관련 쟁점에 대한 정치적 합의 없이 담뱃값 인상 관련법을 부수법안에 지정한 건 성급했다. 그러나 지정 부수법안엔 소득세법과 법인세법도 포함된 만큼, 야당도 자체 소득세법 및 법인세법 개정안을 제출해 지정 부수법안 틀 내에서 부자증세를 계속 추진 할 수 있는 길이 없지 않다. 따라서 야당도 ‘앓느니 죽자’는 식의 섣부른 보이콧보다는 끝까지 원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요구된다. 여야가 내심 각자의 명분만 적당히 마련하겠다는 속셈으로 국회 파행을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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