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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재출간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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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재출간 뒷이야기

입력
2014.11.2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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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판권이 김영사에서 와이즈베리로 넘어가면서 시작된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김영사는 2010년 5월 샌델 교수의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를 ‘정의란 무엇인가’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했다. 당시 선인세는 2만달러(약 2,300만원). 책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11개월만에 밀리언셀러에 등극했다. 2014년 5월 계약이 종료되자 김영사는 처음 선인세의 10배인 20만달러를 제시했으나 더 많은 금액을 약속한 와이즈베리에게 밀려났다.

잘 나가던 책이 계약 종료를 이유로 출판사가 바뀌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4년 간 샌델 교수에게 14억7,000만원 가량의 인세를 지불한 김영사로서는 속앓이를 했겠지만, 출판사 선택은 저자의 권리이니 별 말 없이 넘어갔다.

문제는 와이즈베리가 24일 ‘정의란 무엇인가’를 새로 출간하면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터졌다. “(기존 책이) 판매량에 비해 완독한 독자 비율이 현저히 낮은 점을 반영해 (…) 독자 눈높이에 맞춰 이해하기 쉽게 번역”했다는 문구에 발끈한 김영사 측은 출판권이 넘어간 후의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그 내용은 첫째, 와이즈베리가 김영사의 번역본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수 차례 요청했다는 것, 둘째 김영사가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사전 동의 없이 사용했다는 것, 셋째 책의 최종 판매부수가 123만4,289부인데 200만부 이상 판매된 책이라고 뻥튀기해 홍보했다는 것이다.

고세규 김영사 편집부 이사는 “9월 원번역자인 이창신씨로부터 와이즈베리가 새로 작업한 번역본이 자신의 번역을 상당 부분 표절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와이즈베리에) 항의했으나 새 책에 어느 정도 반영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와이즈베리는 김영사에 번역본 사용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새 책의 내용은 원번역과 분명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와이즈베리의 박은식 책임편집인은 “전문번역가의 번역을 샌델 교수와 친분이 있는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가 꼼꼼히 감수했다”며 “이전 책에서는 ‘welfare’를 행복으로 번역했는데 이를 복지로 바꾸는 등 관념적으로 번역된 단어들을 쉽게 바꾸는 데 역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제목과 판매부수에 대해서는 “제목에 상표권이 없다는 건 다 아는 사실” “판매부수는 비공개 사안이라 에이전시나 김영사에 물어보지 못했고 200쇄 이상 나온 것을 기준으로 200만부로 계산했다”고 해명했다.

김영사가 표절 시비를 진전시킬 계획이 없다고 밝힘으로써, 이번 일은 베스트셀러를 둘러싼 출판사 간 감정싸움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주목해야 할 것은 물 밖으로 잠깐 튀어 오른 다툼이 아닌 물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몇몇 언론은 이번 사태를 두고 책의 판권이 5년 새 10배 뛰었다고 보도했지만 실상은 10배를 제안하고도 다른 출판사에 밀렸으니 그 이상 뛴 셈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인기를 업고 2012년 출간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선인세가 50만달러(약 5억5,300만원)로 알려졌으니, 이번 ‘정의…’의 선인세가 그보다 낮으리란 법은 없다.

팔릴 만하다 싶으면 너도나도 뛰어드는 한국 출판사들이 세계 출판시장에서 ‘봉’으로 통하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막대한 자본을 총알 삼아 빈익빈부익부를 심화하는 국내 출판업계. 자본주의의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띄운 '정의란 무엇인가'란 화두가 '돈이란 무엇인가'란 장탄식으로 바뀌게 된 배경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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