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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니 임대료 두 배… 홍대 땡땡거리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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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니 임대료 두 배… 홍대 땡땡거리의 비명

입력
2014.11.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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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 등 홍대 문화 발원지 주변 상권 확대되면서 월세 급등

토박이 상가 하나 둘씩 외곽으로… 예술인들도 둥지 잃고 한숨만

홍대 문화의 마지막 보루인 서울 마포구 산울림소극장 건너편의 '땡땡거리'. 최선아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3)
홍대 문화의 마지막 보루인 서울 마포구 산울림소극장 건너편의 '땡땡거리'. 최선아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3)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 산울림소극장 길 건너 만화책 이름을 딴 작은 술집이 하나 있었다. 2009년쯤 문을 연 이 곳은 생맥주 한잔(500cc)값이 1,500원에 불과해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 가게는 지난 달 돌연 문을 닫았다. 재계약을 앞두고 건물주가 월세를 15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두 배 올리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 가게 건너편에서 오랜 기간 숯불갈비집을 운영해온 A씨 역시 올 9월 장사를 접었다. 250만원씩 내오던 월세를 새로 바뀐 건물주가 5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해서다. 이 자리에는 최근 직영점이 크게 늘고 있는 돼지고기 전문식당이 2층까지 확장 공사를 한 후 월세 800만원을 내고 개업을 했다. 인근에 있던 횟집 역시 두 배 가량 뛴 월세를 버티지 못하고 지난 달 폐업을 했고, 그 자리엔 프랜차이즈 밀크티 전문점이 들어섰다.

음악 미술 등의 문화로 대표되는 홍대에서 옛 색깔을 유지해온 유일무이한 장소로 손꼽히던 ‘땡땡거리’가 위기를 맞고 있다. 홍대의 상권이 합정, 상수, 연남에 이어 신촌 방향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최근 들어 이곳에도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대형 상점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는 탓이다. 오랜 기간 터를 잡고 땡땡거리를 문화 명소로 키워낸 상인과 예술인들은 갑자기 크게 뛴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하나 둘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땡땡거리는 서울 마포 산울림소극장 건너편의 작은 샛길에서 시작해 와우교 아래로 옛 철길을 따라 홍대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200m 남짓의 길이다. 행정구역상 와우산로 32길인 이 곳은 경의선이 다니던 시절 기차가 올 때 ‘땡땡’ 소리가 울린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2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올 하반기 들어 이 골목의 상점 4곳이 임대료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줄줄이 폐업을 했다. 주점을 운영하다 지난달 문을 닫은 김모씨는 “보증금 3,000만원, 월세 150만원을 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월세를 100만원 정도 올리자고 해서 고민 끝에 영업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15년간 이 거리에서 장사를 해온 박모씨 역시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를 250만원에서 35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고 현재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할 지 고민 중이다.

무리한 임대료 인상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이 거리의 상인들이 5년 이상 영업을 해온 경우가 많아서다. 현행법상 환산 보증금(보증금+월세×100) 4억원 이하인 경우는 계약 갱신 때 9% 이상 임대료를 올릴 수 없도록 규정돼 있지만 계약기간이 5년이 지날 경우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이 사라진다. 건물주가 높은 임대료로 새로 계약을 맺자고 해도 이를 거부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거리가 홍대 문화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이다. 이 곳은 90년대 인디밴드 1세대 등 문화 예술인들이 처음 자리를 잡은 홍대 문화의 발원지였다. 이후 예술인들은 홍대 앞으로 진출했지만, 2000년대 들어 홍대가 복합 상권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상수와 망원 등 외곽으로 밀려나기를 거듭했다

보다 못한 예술인들은 마지막 남은 땡땡거리를 지키자는 취지로 올 초 ‘재주를 헤아리는 마을’이란 의미의 ‘예상촌(藝商村)’을 만들고, 6월부터 땡땡거리마트, 시 낭독회, 영화제 등 각종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 홍대 상권은 외국인 관갱객까지 몰리면서 합정, 동교동, 연남동 등으로 넓어지더니 최근에는 신촌으로 가는 길목인 땡땡거리에까지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인근의 공인중개소 대표는 “문화 예술 명소로 부상한 데다 주변에 경의선 공원이 들어온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최근 관심이 부쩍 높아져 매물이 사라진 상태”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프랜차이즈 업체들과 공인중개사들이 합작해 건물주를 부추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선종필 상가레이더 대표는 “홍대 상권이 워낙 확장되다 보니 창업 컨설던트들이 나중에 양도 차익을 노리고 부동산을 미리 선점하기 위해 공인중개사와 손을 잡고 세입자나 건물주에게 매매를 권유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5년 간 이곳을 지켜온 초원(예명) 예상촌 예술촌장은 “이 곳마저 사라지면 문화 명소였던 홍대만의 브랜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박나연인턴기자(경희대 호텔관광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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