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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ㆍ심청, 대중 위해 틀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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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ㆍ심청, 대중 위해 틀을 벗다

입력
2014.11.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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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 배경 옮긴 창극 '다른 춘향'

무대로 옮긴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에 의해 새롭게 쓰인 국립창극단 '다른 춘향'의 성춘향은 이몽룡에게 운명을 맡긴 여인이 아니라 변학도의 악행에 맞서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국립극장 제공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에 의해 새롭게 쓰인 국립창극단 '다른 춘향'의 성춘향은 이몽룡에게 운명을 맡긴 여인이 아니라 변학도의 악행에 맞서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국립극장 제공

낯익은 두 편의 판소리를 낯선 텍스트로 변주한 거장의 손길이 겨울 극장가에 훈풍을 불어넣고 있다. 전국민이 다 아는 순애보는 사회고발극으로 변했고 부녀지간의 애틋한 정에는 걸쭉한 입담이 더해졌다. 한국의 대표 고전 ‘춘향전’과 ‘심청전’이 새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거듭난다.

현대의 옷을 입힌 창극 ‘다른 춘향’

20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오른 ‘다른 춘향’은 기존 창극과 완벽히 다른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루마니아 출신의 오페라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이 몽룡과 춘향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이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불의에 맞서는 춘향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구성했다.

배우들의 의상과 분장을 보면 ‘다른 춘향’의 배경이 현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몽룡은 노트북 컴퓨터로 과제를 하고 클럽을 다니는 겉멋 가득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방자는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세운 껄렁껄렁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춘향의 어머니 월매는 화류계 종사자, 변학도는 비리 공직자, 남원 주민은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외치는 농부로 설정했다.

하지만 신분제로 인한 갈등, 고위 공직자의 폭정 등은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차용했다. 지방 고위 관료의 아들 몽룡과 화류계 집안의 딸 춘향의 사랑은 여전히 금기시되고 변학도는 시위 중인 농민을 강제 해산한다. 옷을 바꿔 입어도 사회 구조의 모순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결말도 다른 듯 닮았다. 잘 나가는 검사 신분으로 금의환향한 몽룡이 변학도의 비리를 파헤쳐 춘향을 구해준다는 내용은 원작과 비슷하지만 이미 춘향을 잊은 몽룡, 이를 눈치채고 몽룡을 기다리지 않은 춘향의 모습에서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읽히지 않는다. 대신 끝까지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는 춘향에게서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려는 주체적인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무대 역시 눈여겨볼만하다. 투옥된 춘향 뒤로 늙은 춘향의 모습이 겹치는 영상 효과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무대 앞에 채워진 물, 춘향이 투옥된 감옥이 새장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연출 등은 4대강, 크레인 농성 등 연출가의 문제 의식을 표현하는 은유적 장치로 읽힌다.

‘다른 춘향’의 파격적인 무대에 “전통 판소리와 창극의 미학을 헤친다”는 비판도 일부 있다. 이에 대해 연극평론가 김명화씨는 “새로운 시도에는 늘 고유의 결을 헤칠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른다”면서도 “정형화한 스타일의 창극에서 벗어나 동시대적 메시지를 입히고 파격적인 형식으로 탈바꿈한 것은 전공자만 즐기던 창극을 대중에게 돌려준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다음달 6일까지 공연한다.

'심청이 온다'
'심청이 온다'

돌아온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한동안 맥이 끊겼던 마당놀이도 국립극장을 통해 돌아온다. 다음달 10일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심청이 온다’는 2010년 이후 마당놀이를 볼 수 없었던 관객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작품이다. 이번 무대를 위해 현대 마당놀이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손진책 연출을 비롯해 박범훈(작곡), 국수호(안무), 배삼식(각색) 등 원조 제작진이 의기투합했다.

이번 마당놀이의 가장 큰 특징은 천막을 펼쳐놓고 벌이던 기존 마당놀이를 극장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점이다. 손진책 연출은 “장터나 공터 바닥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두 발을 딛고 서는 곳은 어디든지 마당이라고 생각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며 “무대의 업다운 효과, 원활한 조명 활용 등 극장 구조의 편리성을 무대에 십분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연극평론가 구히서씨는 “마당놀이는 판소리를 바닥에 깔고 웃음을 주는 형식이라 전통 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공연”이라면서도 “극장 안으로 들어간 무대는 마당놀이 특유의 거칠거칠한 맛보다 세련미가 부각될 수도 있어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손진책 연출은 “무대 위에 3면으로 가설객석을 추가해 관객이 사방에서 무대를 둘러싸게 하고 높이 11m의 대형 천으로 공간 전체를 감싸는 등 관객이 오밀조밀 모여 공동체의식을 느끼게 하는 기존 마당놀이의 공간 연출을 그대로 살릴 것”이라며 “세련미와 질퍽한 맛을 동시에 살리는 공연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내년 1월 11일까지 공연한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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