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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경제 길 막아서는 국회

입력
2014.11.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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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자가 가슴 통증을 호소한다. 위중한 심근경색 환자다. 이런 저런 이유로 피가 굳어진 덩어리, 즉 혈전이 형성돼서 심장을 둘러싼 혈관, 관상동맥을 막았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빠른 진단과 처치가 필요하다. 혈전용해제 투여, 스텐스 삽입 시술, 심폐소생술 등. 다행히 이 남자는 제 때 적합한 처치를 받았다. 쓰러졌던 사람이 네 시간 만에 두 발로 걸어 병원을 나왔다. 운이 정말 좋았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가 본격 치료다. 혈전의 원인은 담배, 매연, 스트레스, 운동부족, 음주,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그 밖에도 수백 가지다. 식생활 등 생활습관 개선, 운동과 체중조절 등 근본 원인에 대한 치료가 따른다.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이다.

‘중년 남자’ 란 단어 대신 ‘우리 경제’를 넣어 본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과 미국의 소비시장에 기대 2000년대 초반까지 누렸던 호황은 지나갔다. 지금 바깥 날씨는 아주 나쁘고 내부 동력도 잃었다. 컨설팅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경제주체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재정ㆍ통화 정책을 총동원해 돈을 푸는 한편, 규제를 풀어 내수를 살릴 참이다. 부동산은 전략적 타깃이다. 즉, 부동산 관련 규제를 풀어 부동산 경기를 살리고 그 온기가 내수시장을 데우기 바라는 것이다. 가계 전체 자산의 68%를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으니 이런 단기 응급처방이 나온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얼른 위기를 넘기고 근본 치료를 시작해도 갈 길이 먼데, 혈전용해제 하나 변변히 투여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국회 문턱을 못 넘어서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법 개정을 논의할 국회 교통위원회 법안심사 소위는 6월 이후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5개월만인 지난 14일 겨우 논의가 재개될까 기대했지만 역시나 처리는 무산됐다. 분양가 상한제 탄력적용,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폐지, 조합원 분양 주택 수 제한 폐지 등의 핵심 법안의 향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회 일정상 이 법안이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오르려면 빨라도 이달 말이나 될 것이라고 한다.

정책이 국회 입구에서 표류하면 시장 불확실성은 더 높아진다. 시장 참가자들이 국회만 쳐다보기 때문이다. 거래 절벽 같은 것이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내년 3월 청약제도 개편으로 청약 여건이 불리해질 무주택 1순위 청약 수요자들이 분양시장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국지적 청약 쏠림이 나타나는 것도 다른 유형의 부작용일 것이다.

부동산 법 개정은 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조치임과 동시에, 철 지난 것을 손질하는 의미도 있다. 분양가 상한제는 10여 년 전인 2005년 주택 분양가 급등을 막기 위해 생겼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이 급랭, 미분양이 속출하고 분양가도 하락하는 요즘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2006년 도입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도 마찬가지다. 경기 침체로 재건축 사업성이 나빠진 지금 유명무실한데다, 도심 재건축을 통한 주택 공급을 막는 걸림돌이다. 조합원 분양 주택 수 제한 역시 가뜩이나 움츠러든 재건축 사업을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한편에서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통해 내수를 진작하는 방식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 경제가 가본 적 없는 길을 가고 있으니, 현 정부 경제팀이 노련한 의사인지 서툰 인턴인지 지금은 알기 어렵다. 정책 방향과 전략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을지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는 분명하다. 응급상황에 손 놓고 있을 순 없다는 것이다. 아스피린 하나 투약 못 하게 국회가 나서서 막았다면, 훗날 그 책임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박상순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오피스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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