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달 내놓을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관련해 기업의 부담을 덜기 위해 정규직을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혀 논란이다. 발단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고용유연성의 균형’ 방안으로 “해고의 절차적 요건 합리화”를 언급한 것이다. “노사정위원회 합의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정부 방침이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보도되면서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파문이 일자 기재부는 “사실과 다르다. 관계부처와 협의한 바도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해명자료에서도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정규직 보호 합리화의 균형’을 거듭 강조한 것이나 기재부의 그간 행보로 볼 때 ‘와전 해프닝’이 아님은 분명하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정규직 과보호가 심한 상태에서 정년이 60세까지 늘어났는데 어떤 기업이 정규직을 뽑으려 하겠냐”며 고용유연성 확대 필요성을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비정규직 보호대책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올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607만여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32.4%에 달한다. 임금은 정규직 대비 56%, 국민연금ㆍ건강보험 가입률도 30~40%대에 그친다. 더 심각한 것은 비정규직으로 몇 년을 일해도 정규직이 되는 경우는 10명 중 1~2명에 불과해 열악한 일자리의 덫에 갇힐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처우 개선의 방편으로 정규직을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은 방향이 틀려도 한참 틀렸다. 정부의 정책 실패와 손쉬운 인건비 절감에만 매달려 무분별하게 비정규직을 늘려온 기업의 책임까지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세계 최하위권인 ‘고용안전성’은 외면한 채 낮은 ‘고용유연성’ 순위만 들먹이거나 선진국의 탄탄한 사회안전망은 쏙 빼놓고 노동시장의 유연성만 끌어대는 논리도 문제다.
최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를 무효로 판단한 항소심 결과를 뒤집은 데서 보듯이, 현재도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은 기업에 유리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더구나 일터에서 쫓겨난 정규직 대부분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결국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비정규직 해소도, 고용률 70% 달성도 요원해질 뿐이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노사관계뿐 아니라 복지와 교육, 성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등 사회적 의제들이 복잡하게 얽힌 사안이다. 어느 한 편의 이익이나 한 요인만 앞세워서는 사회적 혼란과 갈등만 키울 뿐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치열한 논쟁에 기반한 사회적 대타협으로 해법을 찾았다. 정부는 애드벌룬을 동원한 여론몰이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유명무실한 노사정위원회를 정상화하는 등 투명하고 공정한 논의의 장부터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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