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배심, 흑인 청년 사살 경관 불기소… 흑인 분노 폭발 대규모 소요 사태
오바마 평화 시위 TV 호소 불구 뉴욕·시카고 등서도 거리 행진
“우리 모두가 마이클 브라운이다”(시카고) “살인 경찰을 처벌하라”(뉴욕)
미국 동부시간으로 24일 밤 9시 20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카운티 대배심(검찰의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12명의 배심원단)이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사살한 백인 대런 윌슨 경관에 대해 불기소를 결정하자 미 전역에서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브라운이 총에 맞아 숨진 퍼거슨에서는 경찰서 앞에 대기 중이던 군중들이 차량을 불태우고 상점을 약탈했다. 폭동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에서도 대부분 흑인인 군중이 시위를 벌였다. 지난 8월 브라운 사망 직후 규모로 사태가 확산될 경우 중간선거 패배로 가뜩이나 위축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순식간에 아수라장 된 퍼거슨 시내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이날 밤부터 25일 새벽까지 퍼거슨 시내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시내 곳곳에 모여 기소 여부 발표를 기다리던 수백 명의 흑인들은 ‘윌슨 경관의 범죄를 입증할만한 상당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대배심이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격앙된 감정을 표출했다. 대배심 결정을 미리 전달받은 듯한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가 나기 전 TV에 나와 평화로운 시위를 당부했지만 소용 없었다.
군중들은 경찰을 향해 물병을 던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경찰 차량을 불태웠다. 시내 중심가인 플로리상트 거리 상점 곳곳의 유리창이 깨지고, 모자를 뒤집어 쓴 일부 무리는 상점에 침입해 물건을 약탈했다. 사태를 예견한 듯 경찰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최루탄을 발사하는 것과 동시에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경찰의 진압은 25일 새벽에 접어들면서 더욱 강경해졌고 CNN 등 미국 언론들은 시내 곳곳에서 총성이 들렸다고 전했다.
흑인들의 분노는 퍼거슨에 그치지 않았다. 뉴욕에서는 1,000여명의 시위대가 유니온 스퀘어에서 7번가까지 거리 행진을 벌였다. 시카고에서도 수백 명의 흑인 시위대가 경찰본부 정문 앞에 집결해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외쳤다. 필라델피아 등지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이어졌다. 현지 언론은 “이번 사태가 조기에 수습되지 않을 경우 흑인들의 폭력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대배심 기소 판단에 “최선 다했다”
앞서 백인 9명, 흑인 3명(남성 7명ㆍ여성 5명)으로 구성된 세인트루이스 대배심은 기소 찬성 의견을 밝힌 이가 기준인 9명을 넘지 못해 윌슨 경관에 대해 불기소를 결정했다. 배심원을 대신해 평결문을 낭독한 로버트 매컬러크 검사는 “조사는 공정하고 철저했다”고 강조했다. 매컬러크 검사는 배심원단은 3개월간 25차례 만났으며, 법의학자와 총기 전문가 등과 함께 목격자 60명의 증언을 청취했다고 설명했다. 배심원단은 이례적으로 피고인인 윌슨 경관에게서도 당시 상황에 대한 진술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 생중계 속에 대배심 결정을 읽은 매컬러크 검사는 “브라운이 윌슨 경관에게 물병을 던져 승강이를 유발했으며 이후 사건 개요와 증거를 볼 때 윌슨 경관에게 죄를 물을만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또 “윌슨 경관이 도망치는 브라운의 등에 총을 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검시 결과 6발 총알 모두 정면에서 발사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져 시민들의 분노를 증폭시킨 소문 중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브라운의 유가족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가족들은 “우리 아이의 살인자가 죄값을 치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대배심 결정에 부정적인 시민들도 배심원단의 인종 구성이 백인 위주라는 점을 들어 공정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흑인인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제이 닉슨 미주리 주지사의 강경 대응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소요사태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닉슨 지사가 미리 주 방위군을 동원한 것과 관련, 홀더 장관측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일”이라고 강력 항의했다.
● 법적 다툼, 아직 더 남아
대배심의 결정 직후, 윌슨 경관은 현지 언론을 통해 성명을 내 자신이 무고하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내 행동은 경찰관 근무 수칙 및 법률이 정한대로였다”며 “법 집행자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며 나 역시 평소 훈련대로 행동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대배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윌슨 경관이 모든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게 된 것은 아니다. CNN은 이번 평결은 미주리주 사법당국이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할 뿐 연방정부 차원의 인권침해 조사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전했다. 브라운의 유가족이 윌슨 경관과 퍼거슨 경찰 당국에 민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편 토머스 잭슨 퍼거슨 경찰서장은 “윌슨 경관이 현직에 복직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소되지 않으면 복직을 추진할 것이라는 퍼거슨 경찰의 기존 방침을 번복한 것이다. 미국 언론은 윌슨 경관이 사직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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