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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인간 마음의 블랙박스

입력
2014.11.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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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인터스텔라를 봤다. 다크 나이트를 빼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별로 재미있게 본 기억이 없어서 큰 기대 없이 보았는데 예상외로 아주 재미가 있었다.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인가. 혹은 영화관 자체를 오랜만에 가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우주가 배경인 이야기라면 덮어놓고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얼마나 재미있게 봤냐면, 중간에 한쪽 눈에 낀 콘텍트 렌즈를 잃어버렸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잊고 빨려 들어갈 정도로 재밌었다. 잃어버린 콘텍트렌즈는 꽤 비싼 것이었는데 주문제작을 해야 해서 새로 사더라도 일주일 정도가 걸리는데다 하필이면 나는 바로 며칠 뒤에 여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온갖 생각들로 머리 속이 꽉 차있었는데도 영화는 흥미진진하기만 했다. 생각해보면, 깜짝쇼처럼 등장한 맷 데이먼이라든지, 장황하게 사랑론을 펼쳐놓는 앤 해서웨이, 자유자재로 블랙홀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매튜 매커너히, 등등 납득이 잘 안되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좋았단 말인가? 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영화가 끝난 순간 뿌듯함을 느꼈고, 감동이 밀려왔으며, 재밌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함께 본 친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물론 이 모든 긍정적인 감상은 영화가 끝난 뒤, 친구가 좌석 틈에서 잃어버린 콘택트렌즈를 찾아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온 뒤, 어딘가 허전한 기분을 메워보려고 우주영화의 고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았다. 굉장했고, 아름다웠다. 한마디로 완벽했다. 하지만 사람들로 꽉 찬 주말 오후의 멀티플렉스에 앉아 라지 사이즈의 팝콘을 끌어안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완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멍하니, 영화가 끝난 뒤 흘러나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들으며 생각했다. 좋거나 싫거나 하는 감정 혹은 판단은 대체 어떤 식으로 생겨나는 걸까? 그 과정이 새삼스레 신기했다. yes 혹은 no의 단순한 결론을 위해 수많은 변수들이 개입하는 그 과정 자체가 말이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듯 결과는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전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화폐를 무한대의 양으로 투입구에 밀어 넣어야만 하는 느낌이다. 답은 아주 간단한데 왜 그런 답에 이르렀는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나는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는데, 최근 1년 사이에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감명이 깊었다. 마지막 장면이 화면에서 사라진 순간 강렬한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경계는 모호하지만 매우 선명한 감정이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왜 나에게 아주 큰 yes를 외치게 만들었는지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역시 모르겠다. 그런데 그 영화야말로 이런 블랙박스와 같은, 설명하기 모호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투사해낸 영화가 아닌가. 토끼굴에 빠져든 앨리스처럼, 갑자기 이상한 세계로 빠져든 톰 크루즈는 좌충우돌 끝에 가까스로 현실로 돌아온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로 꽉 찬 연말의 장난감 가게에서 아이의 선물을 고르는 톰 크루즈는 여전히 약간은 멍해보인다. 혼란스러워하는 그에게 마치 선언을 하듯, 아내가 당장 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게 뭐냐고 톰 크루즈가 묻자 그녀는 대답한다. 섹스. 그렇다, 답은 항상 몹시 단순하다.

인간들에 대해서 생각해봤을 때, 지극히 단순한 결말에 이르기 위해 매일같이 자판기 앞에 선 채, 온갖 종류의 동전을 쑤셔 넣으며 똑같이 생긴 이름없는 버튼들을 닥치는 대로 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침내 자판기에서 튀어나오게 될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그것은 죽음이다. 하지만 그곳으로 이르는 길은 깊은 밤처럼 깜깜하고, 미로처럼 얽혀있고,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너무나도 어둡고 복잡해서 장님처럼 허공을 더듬으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항상, 어딘지 모르게 약간은 농락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

김사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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