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은 북촌 마을 탐방 등 체험학습
"교사 혼자 해결 비현실적, 외부 전문가·프로그램 활용 필요"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 가지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개인적, 사회적 방안에 대해 말해 보세요.”
20일 서울 강동구 한영고 2층 자기장학실. 모여 있는 3학년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철학, 사회, 경제 등 각 과목 교사들이 주요 대학 면접에 대비해 통합 교과 문제를 골라 학생들에게 질문하는 ‘모의 면접’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몇몇 학생은 교사의 질문을 면접 노트에 옮겨 적고, 예상 답안을 써보기도 했고, 교사들은 면접 장면을 촬영한 뒤 질문의 의도와 면접에 대처하는 학생의 태도, 대답의 장단점, 채점 기준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다.
3층 생물실에서는 통합 논술 교육이 한창이었다. 생물, 화학, 수학 교사들이 대학별 논술 출제 경향을 분석해 문제를 내고, 풀이에 필요한 심화 수학, 물리, 생물, 화학 수업도 병행했다.
이렇게 한영고가 수능 이후 대학별 고사반을 운영한 것은 2003년부터다. 이 학교 유종승 3학년 부장교사는 “다양해진 대학 전형에 맞춰 학생들의 입시준비를 돕고, 수능 이후 흐트러질 수 있는 분위기를 다잡자는 취지로 시작했다”며 “인문계, 자연계 통합반을 만들어 정규수업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한다”고 말했다.
한영고는 올해 여름 방학 중 각 학급별 대학 수시모집 응시자를 분석해 대학별 고사반을 편성했다. 학부모들은 물론,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이미 졸업한 재수생들도 면접, 논술 지도를 받기 위해 수능 후 학교를 다시 찾아올 정도다.
이미 대학에 합격했거나 논술, 면접을 치르지 않는 학생들은 현장 체험학습에 참여하거나 학교가 주최하는 입시설명회에 참가한다. 서울 명동과 북촌 일대 문화를 체험하며 외국인과 동영상을 찍는 마을탐방 체험학습,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체험 프로그램 등이 진행됐다.
대학에 진학한 졸업생들이 각 대학의 특성과 입시전략을 알려주고 후배들을 격려하는 ‘멘토와의 시간’도 마련됐다. 이날 오후에는 서울대 조경학과, 원자핵공학과, 수학교육학과 학생과 한영고 후배들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정해진 예산과 인력 때문에 아쉬운 점도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학생을 위한 노동강의처럼 전문강사의 수업이 필요한 프로그램은 비용 문제 때문에 쉽게 편성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 교사는 “입시가 끝난 학생들에게는 이 기간 체험학습이 가장 효과적인데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게 아쉽다”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학생들의 안전 문제 때문에 아무래도 학교 밖 수업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능 이후 열렸던 체육대회와 졸업여행도 올해는 생략됐다.
전문가들은 수능 이후 기간 동안 학교가 학생들을 형식적으로 교실에 묶어 두기보다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필요할 경우 정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등 전문인력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수능 이후 입시 형태, 합격 여부에 따라서 수업을 통합하거나 분리해 운영하는 것이 좋지만, 교사가 이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낼 수는 없다”며 “각 학교별로 학생들의 여건을 고려해 어떤 프로그램이 가장 효과적인지 미리 기획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섭외하거나 외부 프로그램 이용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일남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입시 전략 안내 뿐 아니라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아 상실감에 젖은 아이들에게 멘토를 연결해 새로운 비전을 찾아주는 것도 중요한 학생 지도”라며 “학교가 학생들에게 일일이 멘토를 맺어주기 어렵다면 멘토 특강을 통해 꿈과 비전을 찾아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 25개 자치구에 마련된 서울시진로직업지원센터는 관할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진로직업교육을 무료로 실시한다. 정부 공무원, 사회복지사, 바리스타, 운전면허시험원 등 각종 직업을 체험하고 직업 관련 정보를 알려준다.
여성가족부는 수능 이후 수험생을 대상으로 ‘명사와 만나는 100회 릴레이 특강’을 연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 출신인 나승연 오라티오 대표 등 명사들이 내년 1월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청소년 시절 겪었던 고민과 꿈 등을 들려준다. 여가부와 국립수련원은 특화 캠프도 마련했는데, 전국 5개 국립수련원에서 12월까지 약 1,200명의 수험생을 대상으로 토크콘서트 진로특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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