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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주택가에 중산층 공동주택 지원 '마중물 융자' 어때요

입력
2014.11.2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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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자치운동 힘쓴 성대골 주민들 공동주택 지어 함께 사는 게 꿈이지만

전세금 빼서 건축비용 써야 하는데 완공 때까지 주거비 마련 어려워

도심 저층 주거지 살리고 작은 건설업체에도 고용 기회...

전세가와 집값 차이 적은 광역시도 마중물 융자주택 적극 검토해야

“사람들이 오래 살고 싶어하는 동네를 만들고도 전세가가 올라서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계속 여기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성대골 주민들이 주택협동조합을 비롯한 지역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사진제공 김소영씨
“사람들이 오래 살고 싶어하는 동네를 만들고도 전세가가 올라서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계속 여기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성대골 주민들이 주택협동조합을 비롯한 지역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사진제공 김소영씨

자연스레 형성된 전통마을은 대개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섞여 있다. 잘 사는 사람은 큰 집을 짓고 살고 가난한 사람은 작은 집을 짓고 산다. 서로간 살림살이를 대개는 알고 살아서 흉년이 들거나 자연재해가 동네를 휩쓸었을 때 잘 사는 집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게 보통이었다.

현대로 넘어와서도 잘 사는 집이 가난한 집을 돕고 사는 전통만 단절됐을 뿐 동네에 큰 집과 작은 집이 고루 모여있는 것은 단독주택 내지 다가구, 다세대 주택 등으로 형성된 저층마을의 특징이었다.

이것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것이 아파트단지다. 물론 평형에 따라 조금더 싼 집에서 비싼 집까지 나뉘기는 하지만 대체로 일정 금액 이상인 아파트 가격의 특성상 중산층만의 주택이 되었다. 상류층만을 고려한 단지도 생겨났다. 이런 아파트 단지에 가난한 이들의 주택으로 들어온 것이 임대주택이다.

아파트를 단지화하면서 원래는 정부(지방정부)가 제공해야 할 노인정과 놀이터, 심지어는 학교부지 같은 공공시설을 아파트 단지 스스로 해결하게 만든 정부는 임대주택 문제 역시 같은 방식으로 해결했다. 용적률을 높여줘 아파트 단지에 지을 수 있는 아파트 채 수를 늘려주는 대신 임대아파트를 짓게 했다.

아파트를 안정되게 사는 신분(중산층)의 상징으로 여기게 된 사람들은 임대아파트로 인해 중산층이 산다는 아파트 단지의 이미지가 달라지는 걸 꺼려했다. 그들은 붙어있는 임대아파트 단지를 격리시키려고 담을 따로 만들고 출입구를 제한하기도 했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대놓고 멸시를 할 수 있는 야만적인 사고가 집단의 이름으로 실행에 옮겨지는 거칠고 거친 시대를 대한민국은 지나고 있다.

임대아파트 자체가 실상은 가난한 사람들만의 거주지도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주택가격이 급상승하고 이명박_박근혜 정부에서도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서 그 이전에 집을 마련한 사람과 마련하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벌어졌다. 그 이후 취직한 세대는 근로소득을 모아 집을 마련하기가 점점더 어려워졌다. 주택인구통계만 봐도 세대별 자가주택 보유 비율이 다르다. 2010년 인구주택센서스에 따르면 나이가 많을수록 자기집을 가진 비율은 높았는데 70세 이상은 74.56%가 자기집을 갖고 있으며 60~69세는 74.02%가 자기집을 가진 반면 50~59세는 63.76%가, 40~49세는 52.32%가, 30~39세는 36.78%가 자기집을 갖고 있었다. 집값이 급상승하기 시작하는 2000년에 50세에 이른 이들의 자가주택 보유율이 비슷한 반면 그 아래 세대로는 주택 보유율이 확확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아래 세대에는 집을 갖는다는 것이 일부에게만 가능해진 엄청난 사치이며 전세와 월세 임대주택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

터무니없이 비싼 집을 사기 위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느니 아예 집을 사지 않는 삶을 선택하겠다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장기임대주택에 대한 수요도 높다. 일반 아파트 분양 실적이 신통치 않은 올해에도 서울주택공사(SH)의 장기전세주택 10월 분양은 경쟁률이 18.8대 1에 이르렀다.

전세 시세의 80%만 부담하고 최장 20년간 거주한다는 점에서 장기 전세주택은 장단점이 있다. 강남 지역의 경우 다른 지역의 집을 사도 될 정도의 가격이라 입주층이 꼭 저소득층도 아니기 때문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너무 적다 보니 편법 입주가 생겨날 가능성도 크다.

무엇보다 이런 주택들은 모두 아파트 단지 옆이나 별도의 아파트 단지로 존재한다. 오밀조밀한 단독주택가에 단독주택이나 다가구 다세대 연립주택의 형태로 있는 임대주택은 드물다. 있어도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임대주택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저소득층을 외지로 내모는 주택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도심의 저층마을에 늘어가는 빈 방을 수리해서 빈곤층을 위한 주택으로 임대하면서 시작한 이 정책은 분명 저소득층에게는 의미가 있겠으나 날로 늘어나는 무주택 중산층까지 포용하기는 한계가 크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고 집을 사는 데에 생활의 모든 것을 걸고 싶지는 않으며 장기임대주택을 위해 낯선 아파트 단지로 옮겨가고 싶지는 않은 무주택 중산층을 위해 오래된 마을에 장기임대주택을 만들어주는 것은 힘든 일일까. 규모의 경제 때문에 공공기관이 선택해야 하는 거대한 아파트형이 아니라 민간에 위임해서 소규모로 만드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퇴락해가는 도심의 저층주거지를 재생해서 쓰는 방법으로도 매우 바람직할 텐데 말이다.

지난 회에 소개한, 지역재생을 위한 건축활동에 힘써온 주대관 액토건축 대표는 “기존의 주택지에 장기임대주택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고 말한다. “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공사(SH)의 장기임대주택이 가능한 것은 국공유지의 싼 땅이 있어서 건축비가 덜 든다는 이유가 크다. 기존의 주택지는 땅값이 비싸서 건축비가 많이 들고 그에 비례해 임대료도 비싸진다. 공공기관이 그 큰 부담을 대신 질 이유도 없고 개인에게 부담 지우면 결국 들어올 사람은 고소득층 외엔 없다.”

그래서 그는 장기임대주택보다는 차라리 전세에 살고 있는 중산층들이 안심하고 계속 살 수 있는 주택을 저층 주거지에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미 쓸만한 국공유지 자체도 동이 나 버려서 장기임대주택 정책 자체가 한계에 이르기도 했다.

지난 회에 소개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성대골에서 지역자치운동을 하는 이들이 꿈꾸는 주택조합도 집을 사기에는 돈이 적고 전세 살만한 돈은 있는 중산층이 안심하고 오래 살 수 있는 집이다.

지역자치모임 성대골사람들의 김소영 대표는 “함께 지역운동을 하는 이들이 전세값이 올라서 동네를 떠나야 하니까 맥이 풀린다”고 말한다. 지역 청소년운동모임 좋은세상을만드는사람들 박신연숙 사무국장은 “일터와 삶터를 일치시키는 오랜 꿈을 여기서 이뤘는데 전세가 상승으로 임대주택을 찾아 아현동으로 이사 가니 이제 매일 일터로 출퇴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취학 어린이들의 방과후 학교 역할을 했던 성대골 마을학교의 교사였던 이정연(37)씨도 마곡지구 장기전세아파트에 당첨이 되면서 동네를 떠났지만 매일 왕복 2시간씩 전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와서 하교지도를 하고 있다. 골목은 많고 초등학교는 멀어서 이곳에는 저학년 학생들의 하교지도가 필요하다. 이곳에 살 때는 일주일에 한번씩 오후2~6시에 방과후 학교 교사까지 했지만 마곡으로 전학시킨 두 자녀(초등학교 3학년, 1학년)가 있어서 마을학교 교사는 그만두었고 하교지도도 겨울방학 전까지만 하기로 했다.

“성대골 살 때는 애들이 저녁까지 신나게 뛰어놀다가 시커메가지고 들어왔다. 여기(마곡)서는 나가 놀라고 해도 친구들이 없다고 일찍 들어오니 그게 제일 속상하다”는 이씨는 “이렇게 좋은 동네서 이사 가기 싫어서 (마곡 장기전세아파트를 신청한) 남편과 몇 달씩 싸우기까지 했다”고 전한다. 2008년 남편 직장을 따라 부산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성대골에 정착했고 김소영씨가 주축이 되어 만든 어린이도서관에서 만난 엄마들과 행복한 학교 만들기 운동을 하면서 사람 사는 재미, 이웃과 어울리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던 이정연씨. “전세금 마련해야 하는 2년이 금방 오더라고요. 우리집은 주인이 좋아서 1,000만원씩 밖에 안 올리긴 했지만 옆집 보면 3,000만원에서 5,000만원씩도 오르고. 시프트는 주변 시세가 올라도 5%만 반영한다니 그건 좋지만 전세금 걱정만 아니라면 애들이나 저나 당장 그 동네로 돌아가고 싶지요.”

성대골사람들은 그래서 전세로 사는 이들을 모아서 공동주택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아파트 가격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기는 하지만 KB국민은행은 11월 전국의 아파트 전세가가 집값의 69.6%에 이르러 집값 통계를 시작한 1998년 12월 이후 매매가에 가장 가까이 근접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집값이 비싼만큼 전세가도 비싸다는 말이다. 전세가를 모아서 집을 지을 수 있다면 꽤 근사한 대안이 되겠다.

그러나 성대골에 전세입주자들이 모여 주택조합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장애는 땅값이다. 김소영 대표가 이곳으로 이사온 2002년만 해도 평당 600만원이던 땅값이 지금은 1,700만원쯤 한다. 100평만 사도 17억이 든다는 말이다. “전세가도 만만치 않으니까 일단 집이 지어지면 전세가에서 조금만 보태서 집값을 낼 수 있어요. 문제는 집이 지어지는 동안 어딘가에서 전세를 살아야 하니까 집 지을 돈을 따로 마련하기가 힘든 거지요. 현금이 두 배 이상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것만 융자해주면 좋겠다고 서울시에 제안했는데 확답을 듣지 못했어요. ” 김소영 대표는 말한다.

건축가 주대관씨는 “집을 지을 종자돈만 마련해주면 입주와 동시에 융자금을 거의 회수할 수 있다. 한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하면 그 돈을 회수해서 다시 다른 지역에 지원하면서 계속 융자를 해줄 수 있다. 일테면 지속가능한 융자인 셈이다”고 말한다. 그는 물 한 바가지를 부어서 펌프물을 펑펑 쏟아지게 만드는 마중물에 비유해서 이런 집을 ‘마중물 주택’이라 부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전세에 살지만 집 살 돈은 아직 마련하지 못한 이들에게 공동주택을 지어 집문제를 해결하는 ‘마중물’융자주택은 전세가가 집값의 65.2%인 서울보다도 전북(75.3%) 충남(74.8 %) 강원(73.2%) 경기(68.5%) 에서 더 쉽게 땅값을 회수할테니 실현 가능성이 더 높다. 인천을 제외한 5개 광역시도도 전세가가 집값의 72.9%에 이른다니 성공확률이 서울보다 높다. 마중물 융자주택은 뿐만 아니라 주택공사가 임대주택을 유지하면서 들여야 하는 과도한 부담을 없애준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대형건설업체만 지을 수 있는 아파트가 아니라 작은 건설업체도 할 수 있는 주택 형태이기에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게 되고 더 많은 이들을 고용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오래된 저층 주택가를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세우는 재개발 재건축이 중산층마저 집 없는 이들로 내모는 상황이 전국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오래된 저층 주택가에 중산층이 터잡고 오래 살 수 있는 마중물 융자주택이 어디서든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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