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 지음
인간사랑ㆍ346쪽ㆍ1만7,000원
40대 초반에 들이닥친 아버지의 사고사와 동생의 자살은 이 철학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인문학적 소양이 나름 두텁게 쌓여 있던 저자는 자신에게 닥친 불운을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운명과 동일시했다. 그는 쇠똥 냄새 나는 축사를 택했고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탐독하며 절대고독의 늪을 헤쳤다.
잘 나가던 광고회사 직원이었던 저자 홍정(55)씨는 절망의 나락에서 사유의 힘으로 회생한 사람이다. 가족에 대한 부채의식과 그들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을씨년스런 축사에서 살아야 했던 그에게 인문학은 고통을 잊게 하는 위약(僞藥ㆍplacebo) 효과를 제공했다.
저자는 죽음의 문제로 방황하면서 마음과 몸이 모두 병들었던 그 시기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만났다. 그가 니체를 통해 만난 것은 몸이었다. 그는 “몸으로 걷고,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며 “니체를 통해 몸 관리의 위안을 얻었다”(78쪽)고 한다. 니체가 몸의 고통과 죽음을 동일시하고 15세에 썼던 자서전 ‘나의 삶으로부터’를 읽은 뒤에는 니체를 따라 양생술과 섭생을 실천했다. 그런 저자는 니체의 글을 경구처럼 책 곳곳에 배치한다. 그것은 결국 니체에 대한 감사의 형식이었다. “내가 고통으로 힘들던 시절, 니체는 내 상처를 보듬고 위로해 주었다.…(중략)…진정한 자기 돌봄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87쪽) 거기서 매 순간 긍정하라는 영원 회귀의 가르침을 통찰한 것이다.
저자는 힐링 열풍을 신자유주의의 과도한 경쟁에서 비롯된 지친 마음을 치유 받으려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한다. 이 시대는 고작해야 “자신을 죽음으로 밀어 놓고 닦달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과잉 쾌락의 시간 활용에서 삶은 왜소하고 비루해지는”(101쪽) 때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저자는 죽음을 사유한다. 군 기갑학교에서 겪었던 죽음의 공포를 떠올린 저자는 하이데거, 쇼펜하우어, 몽테뉴 등의 철학자를 호출한다. 그에게 그들은 곧 위안이었다.
책의 후반부는 철학의 의미 혹은 효용에 대해 상술한다. 인간이 왜 없는(ou-) 장소(topia)인 유토피아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지를 물으며 하이데거와 지젝, 원효를 논한다. 축사로 들어갔던 무의 의지가 곧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라는 이치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시작으로 ‘어느 낙서가의 인문학 공부’(12월), ‘결혼에 관한 문ㆍ사ㆍ철 스토리텔링’(2015년 1월) 등 자신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인문학 서적을 계속 낼 계획이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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