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의 곡을 함께 연주하는 가족을 꿈꿨다. 부부와 두 자녀가 비틀스의 네 멤버가 되어 ‘아이 엠 더 월러스’ 같은 곡을 연주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합주까진 아니라도 가족이 비틀스의 음악을 함께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꽤나 근사할 것 같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보이후드’를 보며 그런 생각을 다시 했다.
‘보이후드’는 ‘비포 선라이즈’ 3부작으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12년의 세월을 주인공으로 찍은 경이로운 영화다. 여섯 살 소년 메이슨(엘라 콜트레인)이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이야기를 12년간 매년 조금씩 찍어 완성했다고 한다. 소년과 누나가 어른이 되고 부모와 주위 사람들은 조금씩 늙어 간다. 그 사이로 수억 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퇴적층 같은 장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2년의 강이 흐르는 동안 시대를 대변하는 노래들이 나룻배처럼 스쳐 지나간다.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옐로’로 시작해 감독의 친딸인 로렐라이 링클레이터가 춤추며 부르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웁스.. 아이 디드 잇 어겐’를 거쳐 블링크 182, 알리야, 푸 파이터스, 날스 바클리, 뱀파이어 위켄드, 블랙 키스, 요 라 텡고, 아케이드 파이어 등 50곡에 이르는 히트 팝송과 인디 밴드의 노래가 파도처럼 굽이친다.
감독은 이번 영화의 선곡을 위해 200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젊은이들로 팀을 꾸렸다고 한다. 3시간에 이르는 사운드를 채우는 최신 음악들 속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명곡들도 몇 개 있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건 비틀스의 두 멤버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이 밴드 해체 후 발표한 곡들이다.
이 음악들이 인상적인 건 단지 옛 음악이어서가 아니라 극 중 아마추어 음악가인 아버지(이선 호크)와 사춘기 아들이 음악을 매개로 소통하는 장면에 쓰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열다섯 번째 생일에 직접 선곡해서 만든 것이라며 비틀스의 ‘블랙 앨범’을 선물한다. 비틀스의 ‘화이트 앨범’(원제는 ‘The Beatles’로 네 멤버가 불화 속에서 각자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냈던 후기작)을 패러디한 것으로 밴드 해체 후 네 멤버가 발표한 솔로 곡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다. 호크가 자신의 이혼으로 상처 받았던 친딸에게 열다섯 번째 생일 선물로 직접 쓴 편지와 함께 줬던 기억을 재구성해 넣은 장면이다.
‘블랙 앨범’에 대한 호크의 설명이 재미있다. “솔로 곡만 계속 들으면 지루해. 근데 네 명의 노래를 번갈아 들으면 상승작용이 일어나지. 느낌이 와. ‘아, 비틀스다’라고.” 아들이 투덜댄다. “난 폴이 제일 좋던데.” 다시 아버지의 설교. “얘가 뭘 모르네. 제일 좋은 멤버가 어디 있어. 중요한 건 균형이야. 그게 비틀스를 최고의 록 밴드로 만든 거라고.”
그가 계속 말한다. “볼륨 2의 처음 네 곡은 ‘밴드 온 더 런’에서 ‘마이 스윗 로드’ ‘젤러스 가이’ ‘포토그래프’로 이어져. 연결이 완벽하잖아. 폴을 따라 파티에 가서 조지와 신에 대해 대화를 하면 존이 사랑과 고통을 이야기하고 링고가 말하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안 돼?’ 최고의 음반이야. 날 믿어.”
호크는 영화 촬영을 모두 마친 뒤 메이슨을 위해 ‘블랙 앨범’에 관한 편지를 쓰기도 했다. 딸에게 썼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의 결별을 극 중 자신의 이혼과 비유한 점이 눈에 띈다. 그는 이 앨범을 만든 이유로 “존이 총격으로 살해된 게 마흔 살 때였고 내가 지금 그 나이가 됐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영화에도 흐르는 폴 매카트니 앤 윙스의 ‘밴드 온 더 런’(1973)은 폴의 솔로 활동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앨범의 타이틀 곡이다. 서로 다른 성격의 세 노래가 하나로 연결된 듯한 곡인데 이런 방식은 그와 존이 비틀스 후기 앨범에서 즐겨 사용했다. 은유적으로 탈옥을 노래하는 이 곡엔 당시 마약 문제로 범죄자 취급을 받았던 것에 대한 폴의 반감이 녹아 있다.
호크의 말처럼 ‘밴드 온 더 런’에서 ‘포토그래프’까지 네 곡을 연결해서 들으면 해체 후의 비틀스가 흐릿하게 보인다. 그는 메이슨에게 쓴 편지에서 자문한다. 왜 사랑은 영원히 지속할 수 없는지, 왜 우리는 부딪히면서 서로 둥글둥글해진다는 걸 알지 못하는지. 존과 폴 이야기를 한창 늘어놓은 뒤 그는 이렇게 정리한다. “교훈은 이게 아닐까 싶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지만, 사랑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영원할 수도 있다는 것.”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인 한마디가 뭉클하다. “네 엄마와 난 사랑을 지켜내지 못했지만, 넌 우리의 음악이란다. 사랑한다. 생일 축하해.”
고경석기자 kave@hk.co.kr
☞ 폴 매카트니 & 윙스의 ‘Band on the Run’
☞ 폴 매카트니 & 윙스의 ‘Band on the Run’ 1976년 북미 투어 라이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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