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내외는 앞 동에 살고 사위와 딸은 뒷동에 살아. 걔네들 퇴근했는지 외출하는지 다 알 수 있어. 집에 불이 들어오는 것만 보면 된다니까. 아파트 비밀번호도 알아서 내 맘대로 다녀. 싫어하는 기색 없냐구? 며느리가 괜찮다고 했어!” 시내 커피 집에서 지인과 자리를 함께했는데 뒤쪽 자리에서 들려오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드셌다. 쩌렁쩌렁하게 떠들어 대는 중년 여성의 걸쭉한 목소리와 연이어 들리는 여인들의 맞장구,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때문에 지인과의 대화는 진전이 되지 않았다. 소음에 지쳐 서둘러 나가면서 어지간하면 쳐다보지 않으려 했지만 그 여성의 얼굴이 궁금했다. 고개를 꺾어 바라봤더니 공들인 파마머리와 고급 원피스에 싸인 넓은 어깨만 살짝 보였다. 커피 집을 나와 “이제 부유함의 징표가 자식들을 주위에 거느리고 사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구나”하는 나의 말에 “아들과 딸이야 그렇다손 쳐도 며느리와 사위는 뭐야. 사위는 그나마 덜하겠지 며느리가 무슨 죄인이야?”라고 지인이 답했다.
그렇다. 모두가 그런 취급을 받았다고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우리네 며느리는 죄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시어머니에게는 말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극에 달한 우리의 경우 아들을 빼앗아간(?) 며느리라는 존재는 시어머니에게 있어서 단순히 싫은 걸 넘어 증오의 대상이었다면 심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며느리가 저항은 꿈도 못 꿀 약자인 반면 시어머니는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궂은일은 며느리 시키고 쉽고 편한 일은 자기 딸에게 시킨다는 의미의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는 게 우리네 속담이 아니었던가. “미운 열 사위 없고, 고운 외며느리 없다”, “흉이 없으면 며느리 다리가 희단다”고도 했다. ‘며느리’라는 단어가 붙은 경우는 예외 없이 달갑지 않은 것들이다. 며느리 밥풀꽃은 며느리가 밥이 잘 되었는지 보려고 밥풀을 입에 넣었는데 시어머니가 이를 핑계로 며느리를 때려죽이자, 며느리 무덤가에 그녀를 닮은 꽃이 피었다는 전설에서 나온 이름이다. 어릴 적 뒷산에서 놀다 허기졌을 때 동네 형들의 반강제 권유로 억지로 먹었다가 입이 얼얼했던 삼각형의 가시 돋친 풀이 며느리 배꼽이고, 잔가시가 촘촘히 나서 손댈 생각조차 못했던 밉살스런 풀이름이 며느리 밑씻개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수챗구멍 근처나 집안 으슥한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갑각류 절지동물인 쥐며느리는 그나마 바퀴벌레나 지네, 꼽등이에 비하면 훨씬 덜 징그러워 다른 며느리 비하 사례와 견주어 심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 히트를 칠 때의 일이니 벌써 2년여 전의 일이다. 중국 사천성의 작은 도시에 행사가 있어 참석했는데, 궁벽한 도시이지만 곳곳에서 싸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강남스타일 역시 자주 들렸다. 행사 후 개최된 만찬에 중국 관계자들의 부인들도 함께했다. 그날 참석한 중국 여인들은 모두 한국드라마의 광팬으로서 우리 일행을 바라보는 눈빛에 선망과 호의가 적당히 섞여 있었다. 그녀들의 말을 요약하면 “한국 드라마는 정말 재미있고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들은 잘 생기고 친절하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다. 특히 서울과 제주에 꼭 가고 싶다”고 했다. 강남스타일을 정점으로 한 한류 열풍을 실감한 셈인데, 자리가 끝날 즈음에 나온 그녀들의 말에 낯이 뜨거워졌다. “한국 드라마는 좋지만 한국 시어머니들은 모두 그렇게 악독한가요? 드라마만 그렇겠죠?”라는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답변이 궁해 “한국에 다시 태어나서 실제로 경험해 보시라”는 우스개로 얼버무렸지만 뒤끝이 영 개운치 않았다. 한국 문화의 세계화와 비례해 한국 시어머니들의 악명도 함께 높아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일본에서도 “가을 가지는 며느리에게는 먹이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가을 가지는 그만큼 맛이 좋다는 의미인데 일본도 며느리 홀대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달가워하지 않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며느리라는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쪽으로는 닮았구나 하는 생각에 초겨울 날씨가 더욱 을씨년스러워진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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