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듯했던 금융권 ‘상고(商高)시대’가 다시 열릴 조짐입니다. 선린상고를 졸업한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군산상고 출신의 신상훈 사장, 부산상고를 나온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 덕수상고 출신의 김동수 전 수출입은행장 등이 금융권을 떠나면서 맥이 끊길 것이라 예상됐던 상업고등학교 출신 금융권 인사들의 고위직행이 다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9일 공식 업무를 시작한 진웅섭 신임 금융감독원장과 21일 공식 취임을 앞둔 윤종규 KB금융그룹 차기 회장 등을 비롯해 최근 금융권 고위직에 상고 출신들이 대거 입성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 손교덕 경남은행장, 이동대 제주은행장 등 올해 자리가 바뀐 지방은행장 3명 모두 상고를 나왔으니 제2의 상고 전성시대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진 원장은 동지상고를 중퇴한 후 7급 공무원으로 법무부에 근무하다 검정고시를 거쳐 행정고시(28회)에 합격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윤 내정자 역시 광주상고를 나와 외환은행에 입사한 후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야간으로 졸업했습니다. 이들 뿐이 아닙니다. 시중은행 부행장들 가운데에도 상고 출신이 상당합니다. 신한은행(6명)이 가장 많고, 우리ㆍ하나ㆍ기업은행에 각각 2명씩, 그리고 국민은행에도 상고를 졸업한 부행장이 한 명 있습니다. 각 은행 부행장이 3~10명 가량인 것을 고려하면 결코 작지 않은 비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업계에선 대체로 상고 출신 고위 인사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합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고출신으로 금융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은 상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입사 후에도 대학 졸업장은 물론 각종 자격증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라며 “보통 말단사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고른 업무능력을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빈기범 명지경제연구소 금융시장연구센터장은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이 같은 능력중심주의 인사가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학벌보다 능력을 앞세울 수 있는 곳, 금융권만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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