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바람 피운 상대남에 소송
대법 "손배 책임 없다" 원심 뒤집어
민사상 위법성 부정 첫 판결
이혼 전 간통죄 처벌과 배치
대법관 소수의견도 모순 지적
법률상 부부지만 사실상 혼인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 난 상태라면 기혼자와 바람을 피운 상대에게 불법에 따른 손해배상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혼 전 혼인파탄 상태에서 불륜의 민사상 위법성 여부에 대한 첫 대법원의 판례이다. 현재 이혼 전에는 형사상 간통죄가 처벌되지만, 앞으로 대법원이 “혼인파탄 상태에서는 간통 무죄”로 판례변경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A씨가 “별거 및 이혼소송 중 아내 B씨와 부정을 저질렀다”며 C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C씨는 A씨에게 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부부가 장기간 별거하는 등의 사유로 실질적으로 부부공동생활이 파탄돼 실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면,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성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하거나 그 유지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고, 그로 인해 배우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손해가 생긴다고 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부부생활이 파탄지경이라면 불륜이 불법이 아니라는 취지인데, 형사적으로는 법적 혼인상태를 기준으로 간통죄를 처벌하기 때문에 모순이라는 지적이 소수의견으로 나왔다. 이상훈ㆍ박보영ㆍ김소영 대법관은 “부부공동생활이 파탄돼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정만으로 일방 배우자와 제3자의 부정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아니한다는 다수의견은 우리나라가 취하는 법률혼주의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고, 형사 처벌되는 간통행위가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때는 위법성이 부정돼 법체계상 모순된다”며 “부부공동생활이 파탄돼도 혼인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다수의견은) 부당하다”고 별개의견을 냈다. 이상훈 대법관 등은 “이혼의사가 전달됐거나, 실제 소송으로 이혼을 앞둔 상태에서만 (불륜이)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제한을 두고, 이 사건의 경우는 그 경우에 해당된다고 인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들이 소수ㆍ보충의견에서 지적했듯이 법률상 혼인관계에서 바람을 피워 증거가 인정되면 간통으로 인정하는 현행 법률과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간통죄에 대한 상고가 올라올 경우 혼인관계의 파탄 정도와 회복가능성에 따라 대법원 판례 변경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민일영ㆍ김용덕 대법관은 “간통에 대한 기존 대법원 개념 해석을 보완ㆍ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보충 의견도 내놨다. 이들은 “부부 공동생활의 실체가 사라지고 혼인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경우 배우자의 간통에 묵시적으로 사전 동의한 것이라는 해석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남편 A씨와 부인 B씨는 1992년 혼인신고를 했으나 불화로 2004년부터 별거, 2008년 B씨가 A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A씨도 반소를 제기했다. 1심에서 이혼판결을 받고 항소심이 진행되던 중 A씨는 2009년 B씨가 C씨와 성적 행위를 했다며 고소했으나 증거가 없어 무혐의 처리됐다. 2010년 대법원이 A씨 부부의 이혼을 확정하자, A씨는 C씨를 상대로 3,000만원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 1심은 “부정한 관계를 맺었다 해도 그 때문에 혼인관계가 망가진 것은 아니다”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배우자가 있는 사람과 애정 행위를 한 제3자는 그 사람의 배우자에게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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