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시민단체 소속 퇴직 역사교사
징집병 유족 탐문 진실 규명 앞장
“우선 개인적인, 그것도 창피한 얘기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단에 선 43년 간 동학농민혁명을 학생들에게 가르친 건 마지막 1년 뿐이다.”
올해 일흔 살의 일본인 퇴직 역사교사 야나세 가즈히데씨의 고백이다. 그는 서울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보내는 발표문을 이 같은 자성으로 시작했다. 그는 일본코리아협회ㆍ에히메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협회는 한국과 관련한 향토사를 연구하는 시민단체다.
야나세씨가 사는 에히메현은 동학혁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이 있다. 일본군 후비보병(예비역을 마친 장병들로 소집한 부대) 독립 제19대대 때문이다. 그는 “동학혁명을 학생들에게 가르친 1년 동안에도 19대대가 에히메 등 시코쿠 지역에서 징집됐다는 사실은 (알지 못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며 “일본 역사가 19대대를 은폐해 왔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19대대는 동학혁명 당시 일본이 투입한 학살 주력 부대다. 1895년 4월까지 약 6개월간 720여명이 주둔한 것으로 추정된다. 포로조차 일렬로 세워 총살하는 등 당시 국제법과 조선 국내법을 어기면서 동학군을 무참히 죽였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교과서에는 이런 사실이 기술돼있지 않다.
현재 일본코리아협회ㆍ에히메는 일본이 눈 감고 있는 학살의 실체를 밝히는 일을 하고 있다. 19대대의 유족을 만나 선조가 동학군 진압 부대에 동원된 사실을 알리는 작업이다. 최근까지 10년 간 19대대 병사 19명의 유족을 탐문했다. 과거의 신문기사부터 전화번호부까지 동원해 후손을 찾아 나섰다. 야나세씨의 발표문에는 탐문조사의 과정과 내용이 기록돼있다. 이런 보고서가 국내에 공개되는 건 처음이다.
그는 “일본의 침략은 민중에 의한 조선의 민주화를 압살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며 “19대대에 징집돼 싸웠던 병사가 확실히 여기(에히메)에 있었던 사실을 기반으로 과거사를 규명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야나세씨와 협회가 19대대의 동학군 학살에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2004년이다. 이 사실을 알리는 일본인 교수의 강연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해 동학혁명의 유적지를 둘러본 게 결정적 계기였다.
야나세씨는 “동학군을 섬멸한 사실을 일본인들, 특히 일본 정부가 직시하고 이후 조선 지배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협회의 19대대 유족 추적 조사 결과를 공유해온 신영우 충북대 교수(사학과)는 “일본 내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를 밝히는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야나세씨의 보고서는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사연구회가 21일 서울 연세대 학술정보원에서 주최하는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12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야나세씨는 건강 때문에 참석하지는 못한다.
그는 “선조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 등 12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은 조사를 어렵게 한다”며 “그럼에도 이 같은 노력은 가해자로서 책임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라는 말로 글을 끝맺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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