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르는 대형 글로벌 은행들의 각종 비리 스캔들은 개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이들이 속한 은행의 문화 탓일까.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경제학 연구팀이 이런 의문을 가지고 실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은행 산업 자체가 은행원들을 덜 정직하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등이 19일 보도했다. 연구팀은 한 글로벌 대형은행에 재직하는 은행원 128명을 실험실로 불러 모은 뒤 ‘정직함 평가’를 실시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동전을 열 번씩 던져 앞면이 나왔는지, 뒷면이 나왔는지를 온라인으로 보고하게 한 다음 그 결과가 연구팀이 미리 제시한 결과와 얼마나 맞아떨어졌는지 알아보는 방식이었다.
단, 실험은 128명의 은행원을 두 그룹으로 나눈 상태에서 진행됐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집에서 TV는 얼마나 보느냐’와 같이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적인 가정 생활에 대한 질문을 한 뒤 동전을 던지게 했다. 또 두 번째 그룹에게는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 ‘은행에서 당신은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가’ 등 은행 일과 관련된 질문을 먼저 한 뒤 동전을 던지게 했다. 다시 말해 두 번째 그룹에게는 일에 대한 생각을 마음 속에 먼저 주입시킨 뒤 정직함 평가를 받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두 번째 그룹의 승률이 58.2%로 첫 번째 그룹의 승률 51.6%보다 높게 나왔다. 연구팀은 두 번째 그룹의 은행원 가운데 약 16%가 동전 앞ㆍ뒷면의 결과를 거짓으로 보고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연구팀은 제조업, 통신업, 제약업 등 은행이 아닌 다른 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도 같은 방식의 실험을 했으나 ‘거짓 보고’ 등 부정직함을 유추할 수 있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진행한 에른스트 페르 교수는 AP통신에 “은행원들이 일반인보다 더 부정직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를 떠올렸을 때 부정직해졌다는 것”이라며 “은행 문화의 무언가가 그들을 부정직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은행가협회는 그러나 이 연구가 은행 단 한 곳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큰 의미가 없다면서 “미국의 6,000개 은행들은 직원들의 정직함 기준을 매우 높게 설정해 놓고 있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네이처’최신호에 실렸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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