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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MT?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죠"

입력
2014.11.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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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에 하고 싶은 일은 아싸" 34%

알바 청춘에겐 친구마저 사치지만 "난 다른 부류" 어울리기 거부

혼자 밥 먹고 강의 듣고 나 홀로族 증가

아싸. 기분 좋을 때 내는 감탄사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아싸는 다른 의미다. 10여 년 전부터 아싸는 캠퍼스 안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외톨이들, 즉 ‘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불려왔다. 사회부적응자나 일종의 왕따 같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캠퍼스에선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되고자 하는 '자발적 아싸'들이 늘어나고 있다. 참여 대신 배제, 동질 보다 이질, 화합 대신 소외, 중심 보다 변방, 주류 보다 비주류를 스스로 원하고 택한다는 건 분명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올해 초 건국대학교 학생 커뮤니티 ‘쿵’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새 학기 가장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전체 2,404명의 응답자 중 814명(33.9%)이 ‘아싸’라고 답했다. 3명 중 1명은 아웃사이더가 되기를 원한다는 얘기다. 이는 캠퍼스의 낭만인 CC(campus coupleㆍ15.6%)와 동아리 활동(33.2%)보다도 높은 수치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4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학 재학생 및 졸업생 390명 중 47.7%가 “대학생활 중 아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의미에서 2030세대를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젠 인간관계까지 포기한다는 점에서 ‘사포세대’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아싸 신드롬은 대학 내 인간관계가 갈수록 도구화, 파편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핵가족화와 도시화, 한 자녀 가정 증가 등에 따라 젊은이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진 탓도 있다. 하지만 아싸의 원인을 따져 들어가면 입시보다도 더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취업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싼 학자금,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생활고, 수능성적에 따라 인생행로가 좌우되는 입시제도까지, 근본적으론 사회적 현상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제 소개될 사연들은 스스로 아싸의 길을 택한 대학생들의 이야기다. 다양한 이유로 아싸가 된 이들의 이야기 속엔 2030세대의 힘겨운 오늘이 스며들어 있다.

#전성준(가명ㆍ건국대ㆍ21)

내가 ‘알바 지옥’에 입성한 전 대학교 입학 때부터였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등록금과 용돈은 모두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OT니 MT니 하는 것들은 자연히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가 되었다. 친구를 사귄 기회를 완벽히 놓친 난 주로 혼자 다녔다. 사실 학기 초에 무리해서 과 행사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어차피 내겐 대학을 다니는 내내 수업이 끝나면 곧장 알바를 하러 가야 하는 ‘알바 청춘’의 삶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알바 일정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주중에는 학교 근처의 식당에서 새벽 1시까지 서빙 알바, 주말에는 카페 알바. 그야말로 강행군이다. 인간 관계를 쌓는 데 허락된 시간은 없다. 속상하지만 이런 내 처지를 누군가에게 말하는 건 속상함을 넘어 비참하다. 내겐 친구마저도 사치인가 보다.

#송세희(가명ㆍ경희대ㆍ22)

“왜 이리 다들 무심할까요. 언제부터 ‘과’라는 게 뒷전이 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쉽게 생각하는 걸까요.”

오늘도 페이스북 대나무 숲 페이지에 올라온 모 대학 과 대표의 글에 격하게 공감을 하며 글을 캡쳐 해 두었다. 씁쓸한 기분이 들어 부질없는 대학 인간관계에 대해 한탄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려다 만날 징징거리는 사람처럼 보일까 관뒀다. 대학은 슬퍼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곳이 아니다.

과 대표 출신이면 주위에 사람이 북적북적할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오늘도 나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강의를 듣는다. 학과와 사람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지만 불과 1년 만에 나는 대학의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 회의적인 아싸가 되었다.

왜냐고? 과 대표 딱 한 번만 해 보라. 왜 당신들이 주인인 과 행사에 참가하고 과에 관련된 투표를 하는데 이렇게 까지 내가 통사정을 해야 하는가. 그래, 그렇게 얻는 것도 없이 괜히 아쉬운 소리 하는 것까지도 좋다. 더 서운한 건 그렇게 내 시간 써가며 열심히 일했건만 나를 먼저 불러주는 사람들마저 없다는 사실이다. 일방적인 짝사랑, 나도 이젠 지친다.

# 이혜림(가명ㆍ숙명여대ㆍ 23)

'휴~ 이렇게 저를 섭섭하게 하는 남자친구 때문에 너무 속상하네요.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ㅜㅜ’

며칠 전 남자친구랑 또 싸웠다. 어쩜 여자 마음을 이렇게 모를까. 이럴 땐 혼자 끙끙대지 말고 누군가와 험담을 하던 조언을 듣던 수다를 떠는 게 최고다. 근데 막상 친구를 불러내긴 망설여진다. 만날 과제, 학원에 치여 사는 애들을 어떻게 남의 연애사로 불러내겠나. 또 무엇보다 실제로 이런 얘기 하려면 너무 사적인 얘기까지 해야 되니 분명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 안 좋은 얘기를 남한테 하는 건 내 얼굴에 침 뱉기라는 건 깨달은 지 오래다.

커뮤니티 사이트에 남자친구와 싸운 일에 대해 올렸다. 금세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이렇게 요즘엔 기쁜 일이던 슬픈 일이던 감정을 나눌 친구가 필요할 때면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남긴다. 친구를 대체할 것들이 이렇게 많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덕분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사회는 혼자 살 수 없는 곳이다. 또 혼자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나에겐 혼자만의 시간이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이나 소중하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친구가 돼 주는 SNS를 자주 찾게 된다.

#안미현(가명ㆍ서울시립대ㆍ22)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내 자리가 아니다. 학교 이름이 크게 새겨진 학과 점퍼를 맞춰 입고 자랑스러워하는 저 애들과 내가 어떻게 같은가. 늘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며 누구나 원하는 외고 진학에 성공한 나지만, 재수를 했음에도 원하는 최상위권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실수일 뿐 진짜 내 실력은 아니다. 이 대학을 바라보고 준비한 저 애들과 같은 수준으로 분류되는 건 솔직히 정말 기분 나쁘다.

오늘 수업 시간에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영어로 자기소개 하나 유창하게 못하는 애들이 내 동기라니. 유창하게 영어를 하던 고등학교 동창들과 비교를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절망스러울 정도로 수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자꾸 드니 그들과 자연히 선을 긋게 됐다.

앞으로도 이들과 어울릴 생각은 전혀 없다.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난 '다른 부류'라고 생각하고 또 그러고 싶다. 친구는 주로 스펙을 쌓으려고 한 대외 활동에서 만난 타 학교 학생이거나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재수생들이다. 지금은 이곳에서 벗어나 빨리 내 수준에 맞는 직장을 갖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자랑스럽지 않은’ 학교에 꾸역꾸역 간다.

#김태환(가명ㆍ경희대ㆍ25)

수업이 모두 끝나면 5시 30분, 6시까지 피부 관리실에 가서 관리를 받으면 7시, 저녁은 간단히 먹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마치면 9시 그 이후엔 과제.

나의 하루는 이렇게 바쁘다. 이런 내 하루가 자랑스럽다.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술 마시며 노느라 성적은 별 볼일 없고 살찌고 피부도 엉망이면서 자기 계발 서적만 주구장창 찾아보는 사람만큼 한심한 사람은 없다.

철저한 자기 관리 덕에 나는 학과 내에서 얼굴도 잘생겼고 성적도 좋은 ‘엄친아’로 꽤 유명해졌다. 내가 동경의 대상이라며 자신들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다고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후배 녀석을 보니 역시 내 선택이 옳았지 싶다. 앞으로도 내가 대학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일은 없을 거다. 그들이 싫어서가 아니다. 나한테 쏟는 시간도 모자란 데 남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을 뿐이다. 몇몇은 나를 밥맛이라고 욕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찌질한 좋은 애’가 되느니 차라리 '욕 먹는 밥맛’이 되고 싶다. 모든 건 졸업 후 어떤 위치에 가 있느냐에 달려 있는 거니까.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박혜리 인턴기자(경희대 사회학과 4)

강병조 인턴기자(한성대 영문학과 4)

현민지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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