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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동백꽃… 짧고 강렬했던 천재 작가의 일생 파노라마 펼쳐져

입력
2014.11.1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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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경춘선으로 한 시간 가면

김유정 역 5분 거리에 실레마을

동백숲 길ㆍ신바람 길ㆍ산신령 길...

금병산 자락 곳곳 작품 속 배경들

문학관엔 볼거리ㆍ체험행사 풍성

강원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은 천재 작가 김유정이 나고 자란 곳으로 2002년 그의 생가가 복원되며 김유정 문학촌이 조성됐다. 소설 ‘동백꽃’ 속 점순이가 소년의 마음을 잡으려 닭싸움을 붙이는 것을 묘사한 조형물이 문학촌 마당에 조성돼 눈길을 끈다. 김유정기념사업회 제공
강원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은 천재 작가 김유정이 나고 자란 곳으로 2002년 그의 생가가 복원되며 김유정 문학촌이 조성됐다. 소설 ‘동백꽃’ 속 점순이가 소년의 마음을 잡으려 닭싸움을 붙이는 것을 묘사한 조형물이 문학촌 마당에 조성돼 눈길을 끈다. 김유정기념사업회 제공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여길 보아도 저길 보아도 우뚝우뚝 섰는 모조리 푸른 산이매, 잡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김유정 문학전집)

김유정(1908~1937)은 한국의 대표적인 단편문학작가다. 신은 천재 작가에게 긴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른을 채 넘기지 못한 그의 작품은 여전히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생전에 김유정 자신이 아늑한 시골마을이라고 회상했던 고향인 춘천 신동면 실레마을에는 그를 기리는 문학촌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에서 경춘선 전철을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리면 ‘김유정 역(驛)’에 닿는다. 고풍스런 한옥으로 지어진 이 역은 신남역으로 불리다 2004년 12월 김유정 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역명에 사람 이름이 사용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인근 신남 우체국도 2013년 ‘김유정 우체국’으로 개명했다. 우체국 명칭에 사람 이름이 붙인 것 역시 전국 최초다. 작가 김유정은 이렇게 고향마을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김유정 역을 나와 5분 가량을 걷다 보면 소설 ‘동백꽃’의 주인공이 동갑내기 처녀 점순이에게 닭 싸움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유명한 장면을 묘사한 조형물이 0실레마을 김유정 문학촌 입구에서 방문객들을 반긴다. 실레마을이란 이름은 금병산(해발 652m)에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오목한 떡시루 같다고 해 붙여졌다. 그의 대표작 소설 ‘봄봄’을 비롯해 ‘동백꽃’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산골나그네’ ‘만부방’ 등 12편이 바로 이곳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쓰여졌다.

아담한 생가와 두루마기를 입은 김유정 동상, 연못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김유정 문학촌은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그곳에선 ‘봄봄’과 ‘동백꽃’이 그렇듯 토착적인 정감과 순수한 인간에 대한 연민, 해학미 등 그의 작품세계와 짧지만 강렬했던 그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다. 춘천시와 지역 문인들이 힘을 모아 김유정 생가를 복원해 지난 2002년 8월 문을 연 뒤 지금은 연간 40만 명이 다녀가는 지역의 명소가 됐다.

전상국(74) 김유정사업기념회장은 “실레 마을에서 점순이의 눈으로, 덕돌이와 산골나그네의 마음으로 떠난 김유정문학촌 여행에서 비로소 혜성처럼 나타나 영롱한 무지개로 아로새겨진, 겸허하고 정직한 작가 김유정을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전 회장의 말처럼 김유정은 고향 실레마을에서 목격한 일을 소설 산골나그네 등의 소재로 삼았고, 마을의 실존 인물들을 작품에 등장시켰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에 대한 묘사가 더욱 토속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부분이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는 봉건적 토지 제도와 신분제가 여전하고 여기에 식민지 사회의 모순까지 겹쳐져 극도로 피폐해진 1930년대 우리 농촌의 한계와 농민의 고통을 직접 접한 일들을 소재로 삼았다.

김유정문학촌 문학 전시관에는 김유정의 작품전시를 비롯해 1930년대 농촌 모습, 닥종이 인형으로 표현한 소설의 명장면, 작품 배경지도, 구인회 소개, 브나로드 운동, 김유정 추모활동 등이 소개돼 있다. 나무로 만든 디딜방아와 이따금 벌어지는 떡메치기 등 체험행사는 이곳이 민속박물관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서울에서 온 교사 조민욱(45)씨는 “일제시대 수탈당한 농촌의 모습과 계몽운동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해 아이들에게 산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관 등에서 소설가 김유정의 문학세계를 들여다 본 뒤에는 작품의 배경이 된 ‘실레이야기’길을 거닐고 금병산을 오르는 것도 좋다.

금병산은 실레마을 일대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산기슭이 비단병풍을 둘러친 듯 아름다워 등산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새싹이 돋고, 낙엽이 지고,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모습이 계절 따라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곳이라고 등산객들은 말한다.

금병산 자락에는 소설 속 배경답게 등산로 마다 작품 제목을 딴 열 여섯 갈래의 길이 있다. 산골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에 나오는 눈웃음 길, 두포전에 등장하는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동백꽃에서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 길, 산신각 가는 산신령 길 등이 그것이다. 문화해설사의 강의를 들으며 세 시간 남짓 이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새 소설 속 주인공이 된 착각 마저 들 정도다.

천재작가의 문학세계에 흠뻑 취해본 뒤 김유정 역에서 출발하는 레일바이크를 타는 것도 이곳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다. 지난해 8월 개통한 레일바이크는 경춘선 옛 철로 8km를 달리며 북한강의 수려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힘차게 페달을 밟다 힘이 들 때면 자동주행 모드에 몸을 맡기면 된다. 또한 문학촌 주변에 들어선 막국수와 닭갈비 업소에서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음식을 즐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될 듯하다. 관광객 박지현(29ㆍ여)씨는 “김유정 문학촌은 지식을 채우고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며 활짝 웃었다.

춘천=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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