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시인의 부실한 자료와
평북 사투리의 어두운 장막이
오금덩이에 갇힌 사람으로 오해
결코 샤머니즘을 신봉하진 않아
백석의 시집 ‘사슴’ 초간본이 경매에 나왔고, 그 낙찰가가 7,000만원이라고 한다. 그 ‘사슴’에 관해서는 내게도 아프다고 말해야 할 추억이 있다. 내가 백석의 ‘사슴’을 처음 접했던 것은 유신 막바지인 1979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그것은 ‘사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출판사에 근무할 때인데, 편집부원 가운데 한 사람이 ‘사슴’의 복사본을 품고 와서 숨죽인 목소리로 자랑을 했다. 남북분단 이후에도 북한에 거주하며, 문인으로 활동했던 백석의 시집을 철조망 이쪽 사람이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 행위 자체만으로 경찰서에 끌려갈 충분한 사유가 되던 시절이다. 내가 탐을 내자 그가 품속에서 붉은 표지의 복사본을 한 권 더 끄집어냈다. 나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얇은 책을 펼쳤으나 책장 한 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내 손에 쥐어진 책은 복사본을 다시 복사하고 그것을 다시 복사하는 식으로 대를 이어 원본의 5대손쯤 되는 책이었다. 활자는 뭉개지고 여기저기 탈자가 있었으며, 두세 줄의 시구가 잘려나간 페이지도 없지 않았다. 장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남녘에서 자란 내게 평북 사투리가 줄마다 박혀 있는 시는 랭보나 말라르메의 시보다 더 낯설게 보였다. 두 줄로 끝나는 짧은 시 ‘노루’의 경우는 복사 과정에서 잘못되어 뒷부분이 지워져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아무튼 책장을 끝까지 넘기긴 했지만,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북녘의 어느 땅에서 제삿날에 모인 친척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뿐이었다. ‘사슴’이 몰래 찍은 활판본으로 다시 나온 것은 저 치열했던 80년대 초였고, 나는 백석을 조금 더 낫게 읽을 수 있었지만, 주변에는 평북 사투리에 대해 조언해 줄 사람이 없었다. 이동순이 체계를 갖추어 편찬한 ‘백석시전집’이 출간된 것은 1987년이다. 백석의 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그 전집에 실린 낱말풀이 덕택이었다. 그러나 저 복사본의 무서운 추억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나에게서 백석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저 어두운 ‘오금덩이’를 쉽게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석은 오히려 햇볕 속의 사람이다.
김현은 김윤식과 함께 쓴 ‘한국문학사’(1973)에서 백석이 샤머니즘에 탐닉했다고 여기며, 그 두 가지 위험을 지적했다. “그것이 긍정적 세계관의 내용을 이룰 때 그것은 환상과 주술의 세계로 들어가 인간을 말살해버리며, 그것이 비극적 세계관의 내용을 이룰 때는 숙명론으로 인간을 이끌어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살해 버린다. 백석이 간 길은 후자의 길이다.” 이 견해는 자료의 발굴과 연구자들의 노력에 의해 곧 수정되었지만, 백석이 샤머니즘에 탐닉했다는 김현의 주장이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나로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역시 자료가 부실했던 탓도 있고 이른바 북방정서와 연결된 후기시를 폭넓게 읽을 수 없었던 사정 때문이기도 하겠고, 거기에 더하여 평북 사투리의 어두운 장막이 백석을 ‘오금덩이’에 갇힌 사람으로 여기게 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제 와서 백석을 샤머니스트로 보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사슴’에서 샤머니즘과 관련된 여러 장소가 시의 주제가 될 뿐만 아니라 초기 백석의 시적 체험이 그 장소들과 자주 연결되는 데도 불구하고, 그가 무속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시인으로서의 그의 재능을 증명하기까지 한다. 그는 그 어둑한 곳에서 깊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였던 것을 보고 있다. 먼저 ‘오금덩이라는 곳’을 고형진이 엮은 ‘정본 백석 시집’(2007)에 따라 적는다.
어스름저녁 국수당 돌각담의 스무나무 가지에 녀귀의 탱을 걸고 나물매 갖추어놓고 비난수를 하는 젊은 새악시들
- 잘 먹고 가라 서리서리 물러가라 네 소원 풀었으니 다시 침노 말아라
벌개늪역에서 바리깨를 두드리는 쇳소리가 나면
누가 눈을 앓아서 부증이 나서 찰거머리를 부르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피성한 눈숡에 저린 팔다리에 거머리를 붙인다
여우가 우는 밤이면
잠없는 노친네들은 일어나 팥을 까리며 방뇨를 한다
여우가 주둥이를 향하고 우는 집에서는 다음날 으레히 흉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국수당”은 귀신 모시는 국사당이고, “녀귀의 탱”이란 제사 지내주는 사람이 없는 귀신의 그림이다. 마을 “새악시들”이 잿밥을 차려놓고 손을 비벼 빌며 그 원혼을 달래려 한다. “벌개늪역”은 ‘벌건 빛깔의 늪가’라고 고형진은 풀이한다. 거기서 “바리깨” 곧 놋주발뚜껑을 두드려 찰거머리를 잡는다. 찰거머리를 피멍이 든 “눈숡” 곧 눈시울이나 부종 난 곳에 붙이면 낫는다고 마을 사람들은 믿는다. 여우가 우는 밤이면, 노인들은 땅에 팥을 깔고 오줌을 눈다. 팥도 오줌도 모두 사귀를 쫓는 효험이 있다고 옛사람들은 믿었다. 노인들이 이런 방비를 하는 것은 “여우가 주둥이를 향하고 우는 집에서는 다음날 으레히 흉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금덩이라는 곳”에는 온갖 종류의 속신이 있고, 마을 사람들은 그 속신에 의지해서 산다. 속신의 관습은 사람들이 미개하기 때문에만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이 소박한 종교는 한 인간에게서 그가 삼라만상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믿음을 강화시키고 자기 안의 타자와 조화롭게 교섭하는 방식이다. 영험한 존재들은 늘 위협적이지만 그 공포가 고독한 인간 존재를 덜 고독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지명 오금덩이는 필경 오금에서 온 말일 것이다. 무릎 안쪽의 오목한 자리처럼 그 마을은 외진 두메일 것이다. 한의사들이 오금에서 혈을 짚어내듯이 사람들은 한 땅의 오금에 특별한 기운이 있다고 믿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속신을 관찰할 뿐 거기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는 오금덩이를 ‘오금덩이라는 곳’으로 지칭하여, 자신이 외부인임을 명시한다. 그는 속신의 서사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식으로만 움직인다. 그는 여우가 예고하는 흉사에 무서움을 느끼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라고 말하지 않고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라고 말한다. 그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속신을 만들어낸 상상력에서 공포를 발견한다. 그는 깊이 밖에서 깊이였던 것을 본다. 근대인인 그에게 속신의 깊이는 벌써 사라졌지만 그가 느끼는 공포에 깊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시인은 결코 샤머니즘을 신봉하지 않았지만, 식민지 귀신의 잃어버린 영험의 깊이를 어떻게 시의 깊이로 채울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다.
한편 ‘사슴’에는 잔칫날이나 제삿날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풍족한 음식을 먹고 따뜻한 방에서 행복한 시간을 누렸던 이야기를 주제로 삼은 시들이 있다. 잃어버린 낙원의 시와 잃어버린 깊이의 시는 사실 같은 정신에서 나온다. 시 ‘고야’는 이 제목이 말 그대로 옛날의 밤이라는 뜻이니 실낙원의 시로 가름할 수 있는데, 샤머니즘의 주제가 겹쳐 있다. 다섯 토막으로 되어 있는 이 시의 마지막 토막을 적는다.
섣달에 냅일날이 들어서 냅일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냅일 눈을 받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여기며 엄매와 나는 앙궁 위에 떡돌 위에 곱새담 위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 놓고 치성이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으로 냅일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세기물을 냅일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여가며 고뿔이 와도 배앓이를 해도 갑피기를 앓어도 먹을 물이다.
“냅일”은 납일(臘日), 곧 동지 뒤에 세 번째 미일(未日)을 말한다. 옛날에는 이 날을 깨끗하고 거룩한 날로 여겼다. 이 날 내리는 눈이 납일눈이며 민간에서는 그 눈을 녹인 물에 약효가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어떤 깨끗함이 있다는 믿음이며, 그것이 구체적인 물질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이다. 시인은 이 시를 과거형으로 쓰지 않는다. 특히 이 마지막 토막에서는 민간 약사들이 처방전을 쓰듯이 쓴다. 납일눈을 받던 것은 옛날의 일이지만 납일은 여전히 찾아온다. 그것은 잃어버린 것의 끝없는 회복과 같다. ‘사슴’은 실낙원의 시집, 다시 말해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을 낙원의 시집이다.
그런데 시집 ‘사슴’에는 ‘사슴’이라는 시가 없다. 그 대신 ‘노루’라는 두 줄짜리 짧은 시가 들어 있다.
산골에서는 집터를 츠고 달궤를 닦고
보름달 아래서 노루고기를 먹었다
‘집터를 츤다’는 말은 집터를 마련하기 위해 땅을 고른다는 뜻이고, ‘달궤를 닦는다’는 말은 ‘달구’를 이용하여 땅을 다진다는 뜻이다. 옛날 시골에서 이런 일은 마을 사람들의 울력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일 끝에는 작은 잔치가 있다. 그 잔치에 노루고기가 나왔다. 달밤이다. 아름답고 행복하다. 물론 옛날의 일이다. 가장 쉽게 잃어버리는 것이 또한 낙원이다. 시는 잃어버린 것을 마음에 묻어두고 다시 얻어야 할 것을 생각해낸다.
백석은 현대적이다. 그를 미당과 비교할 때 그 점이 두드러진다. 백석은 잃어버린 것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것으로 이야기한다. 미당에게는 잃어버린 것이 없다. 미당에게 현재는 여전히 신라이고 조선이다. 백석에게 현재는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시간이다.
고려대 명예교수ㆍ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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