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장ㆍ차관 인사 명단에 ‘사퇴 대상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로써 노 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재임한 지 1년 7개월 만에, 공직에 입문한 지 24년 만에 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나게 됐습니다.
이번 사퇴가 다소 뜻밖이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노 위원장이 2011년부터 2년간 방위사업청장을 지낸 경력과 최근 불거진 방산 비리를 연결해 사퇴의 배경을 추정하는 해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야당 관계자들마저 “방위사업청장 재직 당시의 정책적 판단 실수나 도의적 책임이야 물을 수 있겠지만, 개인 비리나 부적절한 처신 등 책 잡힐 만한 사안은 없었다”고 말하는 걸로 봐서 방위사업청장 경력을 사퇴의 원인으로 연결하기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노 위원장의 사퇴는 일단 일신상 이유 때문으로 보입니다. 노 위원장은 그간 오랜 고위 공무원 생활의 고단함을 직간접적으로 토로했습니다. 고위 공무원은 권력은 있지만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는데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운신의 폭 또한 좁다는 겁니다. 심지어 “개 짖는 소리마저 신경 쓰일 정도”라는 데요. 그는 사석에서 이런 일화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노 위원장이 반려견을 데리고 자신이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마침 함께 탄 이웃 주민을 향해 개가 마구 짖었답니다. 노 위원장이 곧바로 개가 짖지 못하도록 했고, 이웃 주민도 웃어 넘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뒤 노 위원장은 ‘개도 고위 공직자인 주인을 닮아 기세 등등해 사람을 향해 막 짖는다’는 말이 아파트에서 돈다는 소식을 부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18일 정재찬 신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도 노 위원장은 대변인의 입을 통해 비슷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지난 5년간 청장 두 번, 공정위원장 2년으로 심신이 피로하다.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업무에 지장을 줄까 봐 내색은 안 했지만, 이전부터 사퇴를 생각하고 있었다. 국정감사 등 현안 업무 때문에 미뤄왔지만 국회 업무가 마무리되고, 연말인 현 시점이 (물러날 때로)적절하다고 봤다.” 지난달 국정감사를 받는 노 위원장의 목소리는 ‘몽환적’이라고 할 만큼 기운이 없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제 민주화를 전면에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경제 활성화에 주로 방점을 찍는 바람에 노 위원장 휘하의 공정위가 ‘경제 검찰’역할을 기대만큼 못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그가 별다른 잡음 없이 공정위를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가도 적지 않습니다.
4대강 자전거 길 종주를 증명하는 기념 스탬프를 지역별로 다 모을 정도로 자전거 광(狂)인 노 위원장은 앞으로 이런 공과에 얽매일 필요 없이, 사람들 눈 의식할 필요 없이 실컷 페달을 밟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노 위원장 집 개도 마음 편히 짖을 수 있겠네요.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