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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초에 1명씩 삶 포기… 국가 주도의 예방 전략이 최선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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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초에 1명씩 삶 포기… 국가 주도의 예방 전략이 최선책"

입력
2014.11.1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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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자살 보고서… 진통제 구입량·유독가스 구매 제한, 다리·건물·철로에 높은 울타리 권고

자살 예방정책 모범국은… 세계 최초 예방법 만든 일본, 전국 네트워크 구축한 스코틀랜드 등

한반도는 자살 빈번 지역… 한국 자살률 10만명당 36.6명, 빈곤과 사회통제 스트레스가 원인

세계보건기구(WHO) 세카르 사세나(왼쪽) 정신건강·약물남용국장이 9월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살 예방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제네바=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 세카르 사세나(왼쪽) 정신건강·약물남용국장이 9월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살 예방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제네바=연합뉴스

자살은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9월 발표한 자살 예방 보고서에서 전세계에서 매년 80만명 이상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밝혔다. 40초마다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자살률은 70세 이상 노인 인구에서 가장 높지만 모든 연령대에서 고른 분포를 나타냈다. 심지어 15~29세 연령대에선 자살이 두 번째 사망 원인을 차지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자살이 예방 가능하다는데 주목한다.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은 “보고서는 공중보건의 가장 큰 문제인 자살을 줄이기 위해 (회원국에) 구체적 행동을 촉구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자살 수단 접근 막아야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자살 수단은 주로 음독, 목맴, 투신 등이 많다. WHO는 모든 국가가 자살 예방 전략에 이런 자살 수단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대책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살이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자살 수단을 손에 넣기 어려우면 자살을 한 번 더 고려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약 같은 맹독성 물질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WHO는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 세카르 사세나 WHO 정신건강?약물남용국장은 “인도와 스리랑카는 지역사회의 공용 장소에서 농약을 따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년 농약을 자살 수단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전세계 자살 사망자의 3분의 1에 달한다.

구입할 수 있는 진통제의 처방 분량을 제한하고 유독 가스의 구매를 어렵게 하거나 투신을 막기 위해 다리와 건물, 철로에 높은 울타리를 치는 등의 방안도 WHO는 소개했다. 또 미국처럼 총기로 인한 자살이 많은 국가에선 총기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이외에도 자살 예방을 위해선 보건당국과 지역사회가 정신건강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알코올 남용을 관리하며 전반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도 자살 관련 자극적인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자살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28개국만 자살 예방 프로그램 운영

WHO의 여러 권유와 방안 소개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에서 자살 예방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는 전세계 28개국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일본, 칠레, 스위스, 스코틀랜드의 사례를 긍정적 측면에서 주목했다.

일본은 1997년 2만4,391명이었던 자살 사망자가 1998년 3만2,863명으로 급증하면서 자살문제가 대두됐다. 특히 중년 남성의 자살률이 심각했다. 자살 급증의 원인으로 사회?경제적 요인이 지목됐지만 일본 사회에서 자살은 일종의 금기였고 개인의 일로 치부되었다.

변화의 시작은 2000년대부터였다. 자살로 부모를 잃은 자녀들이 사회적 금기를 깨고 미디어에 나와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자살문제가 공론화됐다. 2002년 후생노동성이 자살 예방 대책 마련을 위한 전문가 원탁회의를 개최하고 2005~2006년 비정부기구인 ‘라이프링크’(LIFELINK)가 의회와 손을 잡고 첫 번째 자살 포럼을 개최하면서 자살은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어 2006년 10만명 이상의 청원 서명에 힘입어 세계 최초로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했다. 다음해에는 자살 예방 정책들의 기본 원칙이 수립됐다. 정책의 근본 철학은 시민들이 삶의 목적이 있는 사회를 건설하고 국가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정했다. 일본 정부는 또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2009년 공공 캠페인을 포함한 자살 예방 활동을 위한 기금을 만들었고 2010년에는 자살예방의 달을 만들었다. 경찰청은 지방자치단체별로 월별 자살 통계를 수집하도록 하고 이에 맞춰 지역 맞춤형 자살 예방 정책을 마련했다.

2009년부터 일본의 자살률이 조금씩 떨어졌다. 2012년에는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자살 사망자가 3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도시 지역과 중년ㆍ노인층에서 자살률 감소 효과가 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젊은 층의 자살률은 여전히 높아 2012년 자살 예방 정책은 젊은 층 지원에 집중하도록 개정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는 2013년까지 자살률 20% 감소를 목표로 2002년 ‘삶을 선택하라’(Choose Life)라는 이름의 국가 주도 자살 예방 정책이 시행됐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남성을 중심으로 자살률이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2001년 인구 10만명당 여성 자살률이 9명인데 비해 남성 자살률은 27명에 달했다.

예방 정책은 각종 정신건강 프로그램으로 구현됐다. 우선 32개 지역 의회 대표와 경찰, 구급차, 주요 시민단체 등을 잇는 전국 네트워크가 설립됐다. 이들은 자살 예방을 위해 각각 의료서비스, 교육, 주거, 경찰, 복지, 고용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자살 예방 지원 역량을 기르는 다양한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또 지역사회에 자살 예방을 위한 재정을 지원했다. 2002~2006년 스코틀랜드 정부는 2,040만 파운드(351억3,300만원)를 자살 예방 정책에 쏟아 부었다. 스코틀랜드는 2010~2012년의 자살률이 2000~2002년에 비해 18% 감소하는 성과를 얻었다.

칠레는 자살 예방을 막기 위해 2005년부터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자살 위험성이 높다고 간주하는 4개의 정신 질환에 대해 관리하고 있다. 또 2007년 제정된 국가 자살 예방 플랜에 따라 자살 케이스들을 국가와 지역사회에서 모두 관리하고 있다. 또 자살 예방 플랜의 목표로 2011~2020년 청소년 자살률 10% 감소를 설정한 만큼 학교에 각종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전화 상담, 인터넷 웹페이지 등을 통해 자살 위험군이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자살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스위스도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2011년 스위스에선 1,034명이 자살로 목숨을 끊는 등 유럽 국가 가운데 중간 정도의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스위스는 연방정부가 건강보험 같은 중요한 이슈를 담당하고 26개 주정부가 자살 예방을 책임진다. 스위스 주정부의 자살 예방 정책에는 자살 수단 감축 프로젝트, 미디어 모니터링, 자살 시도자들에 대한 추적 관찰, 유족 자조 그룹 운영 등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스위스 추크주의 2010~2015년 자살 예방 전략은 성공적으로 평가 받는다. 다만 보고서는 “스위스가 주정부의 모범 사례를 서로 공유하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자살 예방 활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반도는 자살 위험 지역?

WHO는 자살이 빈번한 지역으로 한반도를 지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36.6명이고 북한은 39.5명으로 한국보다 더 높다.

가디언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자살의 공통된 동기라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자살률이 삶에 희망이 없어지고 소수의 화이트 칼라 일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던 1990년대 후반 경제 위기 이후 급증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김현정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인은 자신의 문제를 터 놓고 말하기를 꺼려하고 이것이 더 심각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며 한국인의 성향을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반면 북한의 높은 자살률은 빈곤과 엄격한 사회 통제에서 오는 심리적인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도쿄 조치대의 산드라 페이 조교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주요 원인이지만 어떤 사람은 동성애 또는 정신건강 같은 문제 때문에 북한에서의 삶이 정말로 힘들다고 들었다”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박석길 미국 대북인권단체인 링크(LiNK) 정보전략 부장은 “동독의 (비밀정보기관)슈타지가 그랬던 것처럼 만약 누군가가 국가에 의한 구금, 고문 등 중에 죽었다면 이를 자살로 보고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3대까지 책임을 묻는 연좌제도 북한의 자살률을 높이는 주 원인으로 지목됐다. 페이 교수는 “탈북자로부터 가족 중에 탈북자가 나오면 처벌이 두려워 가족 전체가 집단 자살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WHO의 이번 보고서는 지난해 서울대 의대 통일의학센터에서 나온 논문과 배치된다. 탈북 의사들의 인터뷰로 작성된 당시 논문에선 북한에선 자살이 ‘반역자’로 여겨질 수 있고 가족이 처벌 받을 수 있어 매운 드문 일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가디언은 박상민 서울대 의대 통일의학센터 교수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북한 미디어는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북 체제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 북한 내부의 자살문제를 언급하기 꺼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WHO는 2012년 한 해 9,790명이 북한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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