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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과거 시험장의 소동

입력
2014.11.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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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2년(1610) 10월 1일, 과거 시험장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과거응시자인 거자(擧子)들이 앉아서 쓸 빈 가마니를 얻으려고 계단에 올라가다가 마침 역서(易書)하는 사람이 명지(名紙ㆍ답안지)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는 답안지를 훔쳤다고 생각했다. 역서란 답안지를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과거는 논술형이기 때문에 시험관이 필체를 알아보고 점수를 첨삭(添削)할 수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응시자들끼리 답안지를 서로 바꿔서 베껴 쓰게 했는데 이것이 역서이다. 그런데 경쟁자의 답안을 베껴 쓰는 것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세종 11년(1429) 4월 예조의 건의로 수험생들끼리 역서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각 관청의 아전들에게 베껴 쓰게 했는데, 이를 등록관(謄錄官)이라고 했다. 사동관(査同官)도 있었는데, 수험생이 제출한 시권(試券ㆍ답안지)과 역서(易書) 사이에 잘못 베낀 부분은 없는지 서로 비교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시권에 쓴 응시자의 성명과 생년월일, 주소 등으로 수험생을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보지 못하도록 접어서 봉했는데 이를 봉미(封彌)라고 했다. 과거 시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다 마련했던 것이다.

앞의 광해군 때 명지를 들고 가는 사람을 부정행위자로 판단한 응시생들은 곧바로 감시관(監試官)에게 달려갔다. 감시관은 대간(臺諫)이라고 불렸던 사헌부나 사간원에서 파견되는데, 이때의 감시관은 사헌부 대사헌 정협(鄭協)과 사간원 정언(正言) 이명(李溟)이었다. 이들은 새벽임에도 바로 현장에 출동해서 역서한 등록관을 체포해 조사했다. 조사 결과 부정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흥분한 일부 유생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과거를 파하는 파장(罷場)을 요구하는 유생이 있었고, 대간도 믿을 수 없다고 떠드는 유생도 있었다. 대간에서는 여러 유생들이 뒤섞여 있는 상황에서 주동자와 동조자를 구분하기도 어렵고 자칫하면 일이 더 크게 벌어질 것을 우려해서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험을 진행시켰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직무를 형편없이 수행해서 풍채를 추락시켰다면서 파직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감시관의 문제로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광해군은 이들을 파직시키지 않았다.

이는 유생들이 과거급제에 얼마나 목을 매는 지를 잘 말해주는 광경이다. 유생들이 종사할 수 있는 직업은 벼슬과 농사였는데, 농사를 천하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면서 오직 벼슬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호 이익 선생은 과거의 폐단을 비판하는 여러 글을 남겼다. 이익은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의 명부인 국조방목(國朝榜目) 서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세상이 다스려지는지 그렇지 못한지는 사람을 쓰는 데에 달려있고, 사람이 현명한지 어리석은지는 무엇을 배웠느냐에 달려 있다. 성현의 지혜로운 서적을 배우면 현명한 사람이 되는 길이고, 비루한 습속의 문장을 익히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길이다. 후세의 인재 선발은 과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거자(擧子)들은 모범 답안지(套圈)를 익히는데 모든 힘을 쓴다”(국조방목 서문)

이익이 비판하는 것은 젊은 유생들이 참된 학문이 아니라 정형화된 과거 답안지 익히기에 모든 정력을 쏟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서 과거에도 정형화된 문제와 모범 답안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기출문제를 정리하고 예상문제를 모아놓은 책이 있었는데, 이것이 과문초집(科文抄集)이었다. 이를 줄인 말이 초집(抄集)인데, 모범시를 모아놓은 ‘과시(科詩)’와 외교문서인 표전(表箋)을 모아놓은 ‘과표(科表)’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수 답안을 모아놓은 ‘선려(選儷)’도 있었다. 이익은 ‘금오칠언(禁五七言)’에서도 과거의 폐단을 크게 비판했는데,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과시와 과표의 형식이 있다”면서 “구절마다 일정한 틀(套)이 있고, 글자마다 형식에 맞추는데, 그 방법은 극히 어려우면서도 극히 쉽다”고 말했다. 과거시험에 정형화된 문제를 내는 것과 정형화된 답안을 제출하는 풍조를 없애자고 주장한 것이다. 이익은 앞의 국조방목 서문에서 “내가 근심하고 탄식하는 것은 이 책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과거 자체가 아니라 그 폐단을 지적한 것이었다. 사실 과거를 비롯해서 각종 시험은 여러 부작용도 있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란 점에서 긍정적인 기능이 더 많다. 문제는 이익의 지적처럼 정형화된 문제를 출제하고 정형화된 답을 요구한다는데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 수능도 출제 오류 문제로 시끄럽다. 그것도 EBS교재 문제를 응용하려다 발생한 문제라니 어이가 없다. 앞서 광해군 때의 대간들은 “국시(國試)는 지극히 엄해서 만약 뜻밖의 변이라도 생기면 나라의 체면이 더 크게 손상될 것을 걱정했다”면서 사퇴했다. 국시를 EBS 교재에 의존하는 이 한심한 작태는 언제 그칠 것인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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