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부터 탄자니아 정부, 마사이족 거주지는 정부 소유 주장
4만여명 삶의 터전 잃을 위기, 오늘 국무총리 만나 강력 항의 예정
큰 키에 고수머리, 다부진 체형, 기다란 창. 아프리카의 전사(戰士) 유목민으로 유명한 마사이족이 오랜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이들은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 인근 초원 고산지대에서 살아왔는데, 탄자니아 정부가 두바이 왕족의 사냥 구역 조성을 위해 올 연말까지 퇴거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탄자니아 북부 롤리온도에 4,000㎢ 규모의 야생동식물 보존 통로를 조성하기 위해 정부가 이 지역에 사는 4만여 마사이족 주민에게 올해 안에 떠나라고 통보했다”고 16일 보도했다.
가디언과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마사이족과 탄자니아 정부 간 갈등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이 지역의 땅이 정부 소유라고 주장하며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마사이족을 ‘불법 정착’으로 규정, 이주를 명령했다. 이어 정부는 아랍에미리트(UAE) 소재 사냥 및 사파리 관광업체인 ‘오르텔로 비즈니스 코퍼레이션(OBC)’에게 사냥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식민지 시대에는 유럽 왕족의 사냥터였던 이곳을 근래엔 UAE 왕족과 부유층이 대거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해 탄자니아 정부는 영양 떼와 얼룩말 등 야생 동물이 풀을 뜯고 이동하는 통로에 위치한 롤리온도 일대에 4,000㎢ 규모의 보존 통로를 조성하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보존 통로 대부분에선 계속 방목이 가능하나 사람이 거주하는 것은 금지된다. 문제는 OBC에게 사냥이 제한적으로 허용된 세렝게티 국립공원 바로 옆 나머지 토지 1,500㎢도 보존구역에 포함되면서 논란이 가열됐다. OBC가 UAE의 왕족과 친분이 가까운 한 정부 관료가 설립한 업체로 영국의 앤드루 왕자 등을 고객으로 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결국 “두바이 왕족의 사냥터 조성을 위해 이 곳에 터전을 잡은 마사이족을 쫓아낸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시민단체와 마사이족은 항의 시위를 진행했고, 이메일과 트위터 등을 이용해 전 세계 170만여명으로부터 반대서명을 받아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미젠고 핀다 총리가 지난해 9월 현장을 방문해 2박3일간 마사이족과 생활하며 의견을 수렴한 끝에 정부는 마사이족 추방 방침을 철회했지만, 이번에 다시 번복하게 되었다.
말을 바꾼 탄자니아 정부는 사회ㆍ경제적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10억 탄자니아 실링(약 6억3,0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했지만, 마사이족은 거부한 상황이다. 롤리온도가 속한 응고롱고로 지역 의회 의장 엘리아스 응고리사는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이곳이 왜 정부 소유냐”며 “정부가 토착민들에게 방해 받고 싶지 않아 OBC에게 사냥터를 주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마사이족 대표들은 18일 미젠고 핀다 국무총리를 만나 강력 항의할 예정이다. 마사이족은 “조상에게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를 강탈당할 뿐 아니라 가축 방목도 할 수 없어 마사이족 8만명의 생계에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디언은 “정부가 가축을 지나치게 많이 방목하는 마사이족으로부터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댔지만 결국 정부에게 (롤리온도 일대는) 사냥과 사파리를 통해 수익을 내는 주요 수입원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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