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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다시 무지·공포와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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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다시 무지·공포와 싸워야 한다"

입력
2014.11.1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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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정권, 러 시인 돈봉투로 회유...김우중 회장 5억 기금 쾌척 일화도

고은·백낙청·염무웅씨 등 참석...22일 서울시청서 창립기념 행사

17일 한국작가회의 창립 40주년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시영 이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한국작가회의 창립 40주년을 맞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시영 이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문인운동의 산실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가 18일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유신의 폭압이 기승을 부리던 1974년 11월 18일, 광화문 의사회관 현관에서 ‘시인을 석방하라’는 외침으로 시작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약칭 자실)가 민족문학작가회의를 거쳐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꿔 오늘에 이른 것이다. 창립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마포구 용강동 한국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지난 40년의 역사를 정리한 책 ‘한국작가회의 40년사 : 1974~2014’와 ‘증언: 1970년대 문학운동’ 두 권이 소개됐다.

‘한국작가회의 40년사 : 1974~2014’는 작가회의의 오랜 숙원인 정사 편찬의 산물이다. 편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궁핍 때문에 40년 간 제대로 된 정사를 만들지 못했다”며 “작가회의가 겪었던 영광과 패배, 굴곡진 역사를 가장 공정하게 복원하기 위해 연월에 따라 기술하는 편년체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의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오창은, 이성혁, 소종민, 홍기돈(이상 문학평론가)씨가 각각 맡아 집필했다. 앞에는 시대별 주요 사건을 담은 화보를, 뒤에는 연표와 작가회의가 내놓은 주요 성명서들을 수록해 40년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했다.

‘증언 : 1970년대 문학운동’은 초창기 자실의 활동을 주도한 문인 9명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쓴 한국현대문학사다. 편찬위 부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김남일은 “편년체 기록만으로는 1970년대 당시의 문학운동을 실감나게 기록할 수 없어 증언록을 함께 출간했다”고 밝혔다. 책에는 고은, 이호철, 백낙청, 신경림, 염무웅, 박태순, 황석영, 양성우, 구중서 등 1970~80년대 문학운동의 산증인들이 들려주는 비화가 빼곡하다.

소설가 박태순은 유신독재가 막바지로 치달은 1979년 7월, 정부가 피켓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국내 문인들을 구금하고 외국 시인들을 초청해 호텔에서 세계시인대회를 개최한 기억을 술회했다. 당시 초청된 러시아의 반체제 시인 옙투셴코가 시위하는 한국 문인들을 보고 크게 각성해 특별 강연에서 이를 언급하려 했으나 정부가 찔러준 돈봉투에 그만 입을 다물었다는 뒷얘기가 이 책에 실렸다. “구소련 시인 매수 금액이 당시 환산으로 1,500만원 해당의 달러였다 해요. ‘하룻밤에 천냥 빛 갚는다’는 우리 속담도 있지만 국제건달 시인의 ‘하룻밤 심각한 고민’을 짐작 못할 바는 아닐 수 있어요.”

백낙청 창비 편집인은 정치적·경제적 독립성을 고수하느라 늘 돈에 쪼들렸던 작가회의가 1997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5억원의 기금을 받아낸 일화를 공개했다. “기금을 조금 만들어야겠다 그랬더니 얼마나 필요하냐 그래요. (…) 글쎄 한 5억~6억은 있어야겠다고 했더니 10억을 주겠다는 거예요. 다만 10년에 걸쳐서 매년 1억씩 주겠대요. 그런데 얼마 후 IMF 터질 걸 내가 예견한 건 아니지만, 10년이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또 우리가 매년 1억 받느라 대우한테 목이 매여도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그냥 한 5억쯤 한 번에 주면 좋겠다..” 기금을 받은 지 2년도 안돼 대우그룹은 부도처리 됐지만 김 전 회장이 내놓은 기금은 현재까지 작가회의의 재원으로 남아 있다.

17~22일을 창립주간으로 선포한 한국작가회의는 22일 오후 5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문학과, 희망의 백년대계’라는 이름의 기념 행사를 연다. 고은, 백낙청, 염무웅, 현기영 상임고문의 개회 선언으로 시작해 기념패 및 특별 감사패 증정,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중국 소설가 모옌의 영상 축사, 젊은 문인들의 ‘젊은문학선언’이 이어질 예정이다. 김경주, 진은영 등 젊은 문인들이 작성한 선언문에는 소통불능의 사회와 참여의 기능을 상실한 문학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문학은 자기 안의 괴물과 맞서 싸우며 세계 앞에서 불감해지지 않도록 소외된 자리를 돌보았고 가장 먼 곳까지 메아리를 남겨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공포와 무의식 속으로 너무 깊이 가라앉아 새로운 인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무지, 그리고 공포와 싸워야 한다. 밖으로 나와 세계가 매일매일 새로워지는 경험을 우리는 회복해야만 한다.”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이 땅의 민주주의가 글자 그대로 실현돼서 한국작가회의가 현실에서 역사로 옮겨갈 날을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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