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례 득점왕 등 유럽핸드볼 평정...굼머스바흐서 함부르크로 이적 땐
2만명 홈팬이 고별식서 함께 울어
야구에 박찬호(41ㆍ전 LA 다저스), 축구에 박지성(33ㆍ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있다면 핸드볼에는 윤경신(41ㆍ전 굼머스바흐)이 있다.
지난해부터 국내 최강 실업팀 두산 감독을 맡고 있는 윤경신은 세계 남자 핸드볼의 레전드다. 1995년 12월 ‘핸드볼의 메이저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굼머스바흐에 입단한 그는 6시즌 연속 득점왕을 포함해 8차례 득점왕에 오르며 유럽 핸드볼을 평정했다. 경희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 했고, 2012년 아테네 올림픽 때도 태극기를 가슴에 달았다. 한 번도 나가기 힘들다는 올림픽을 5차례 출전했다.
203cmㆍ95kg의 당당한 신체 조건을 갖춘 윤경신은 그 동안 셀 수도 없는 우승과 득점왕, 아시안게임 금메달 5개, 최우수선수(MVP)상을 수상했지만 자신의 보물 1호는 따로 있었다. 굼머스바흐 팬들이 만들어준 대형 액자다.
“이 액자는 독일을 떠나기 전 마지막 파티에서 굼머스바흐 팬들에게 받은 선물입니다. 액자에 담긴 정성이 너무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제가 활약하는 사진을 오려서 제작한 액자인데요. 그 어떤 트로피보다 가장 아끼는 애장품입니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독일 무대에 진출한 윤경신은 2006년 7월까지 굼머스바흐에서 활약했다. 이후 함부르크로 이적해 2년을 더 뛴 뒤 2008년초, 12년간의 독일 분데스리가 생활을 끝냈다. 2001~02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역대 한 시즌 최다 득점(324골), 국제핸드볼연맹(IHF)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굼머스바흐 팬들은 윤경신이 함부르크로 떠났지만 그를 잊지 않았다. 윤경신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송별회를 준비해 대형 액자를 선물했다. 가로 80cm, 세로 1m 정도 크기였다. 액자 가운데에는 굼머스바흐 시절 윤경신의 등번호 7번을 넣었다.
윤경신은 굼머스바흐를 떠올리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당시에 아시아계 선수가 독일에서 뛰는 것은 쉽지 않았다”면서 “굼머스바흐 팬들은 동양인에 대한 편견 없이 인간적으로 사랑해줬다”고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했다.
윤경신은 당시 굼머스바흐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싶었다. 끝까지 의리를 지키길 원했다. 직접 후원사를 알아보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팀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윤경신은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굼머스바흐 팬들은 구단 사무실 앞에서 윤경신의 팀 잔류를 외치며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는 2만명의 홈팬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한 고별식을 하기도 했다. 윤경신도, 팬들도 함께 울었다.
윤경신은 굼머스바흐 팬들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1999년 6월 자신의 결혼식 때는 10여명이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주기 서울을 찾았다. 굼머스바흐 팬들은 윤경신이 태릉선수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훈련할 때도 한국을 방문에 격려를 해줬다. 윤경신은 지금도 굼머스바흐의 지인들과는 페이스북을 통해 안부를 주고 받고 있다.
“‘그립다. 보고 싶다. 독일엔 언제 오느냐’는 글을 남겨주신다. 평생 잊지 못할 정말 소중한 분들입니다.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노우래기자 sport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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