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한국인들이 에볼라 만큼 아프리카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 이유가 또 있었을까? 서아프리카에서 창궐하고 있는 에볼라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요청에 대해 정부가 보건의료 인력을 지원하기로 했고 선발대가 출발했다. 그런데, 한국은 열대 풍토병인 아프리카 에볼라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열대 지역 전염성 질병을 다루는 ‘열대의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다. 한국에서 이를 전공한 전문가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과 같은 시장경제에서 열대의학 전문 분야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척박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서아프리카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보건의료 지원은 양자간의 ‘신뢰’ 관계가 가장 기본적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서구 사회의 신뢰 관계는 처음부터 잘못 꿰어졌다. 19세기 말에 서구가 아프리카 각 나라의 국경선을 마음대로 그어버렸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의 국경선은 그 산물이다. 설상가상으로 서구 사회는 ‘국제개발협력’의 명분으로 아프리카를 지원해왔지만, 아프리카인들은 순수한 지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구의 아프리카 지원은 항상 정치적 개입과 경제적 착취와 연결되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는 십상팔구 서구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도 따지고 보면 서구가 만든 지식에 근거한 것이다. ‘아프리카에도 종교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스스럼없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볼라가 크게 창궐하고 있는 서아프리카의 경우 내전-사실은 국제적인 성격의 대리 전쟁이지만-은 끝났지만, 이로 인한 고통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내전이 일어났던 곳에 한국의 파견 인력이 나타났을 때, 주민들은 지원에 대한 고마움 보다도 내전의 기억과 상처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에볼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를 서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데 있다. 에볼라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열대의학에 대한 훈련을 받기 위해 한국의 보건의료 인력이 영국에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서아프리카에서 지원하는 방식이 영국이 주도하는 기존 방식이라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어쨌거나 아프리카인들은 한국의 지원을 영국의 지원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지원 방식과는 다른, 서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지원 방식을 깊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강조하건대, 서구는 서아프리카에 대해 매우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다. 한국이 그 이해관계에 휘말리게 되면, 오히려 한국의 기업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강 건너 불구경을 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첫째, 한국의 시장 경제에서 생존하기 힘든 열대의학 분야에 대해 정부가 정책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 등 국제원조 단체들이 열대 지역에 보건의료지원을 하는 상황에서 열대의학 전문가의 양성은 절박하게 요청된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보건의료 지식과 진료방식이 열대 지역에서도 그대로 통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다. 열대의학은 열대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둘째, 지원 방식이 체계화되어야 한다. 이번처럼 대통령의 지시로 느닷없이 지원 인력들을 빨리빨리 구성하다 보면 반드시 시행착오가 따른다. 열대 지역의 활동은 상당히 오랜 기간 치밀하게 기획해도 성공하기 쉽지 않다. 아프리카는 모든 것이 서로 깊이 얽혀 있다. 아프리카의 열대적 특성을 융합 학문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전문가 집단과 연구 기관을 장기적으로 육성하자.
셋째, 국방의학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이번 기회에 독자적으로 설립해야 한다. 한국의 시장 경제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열대의학과 같은 특수한 분야는 국방의학 교육기관이 아니면 키울 수 없다. 세계화 시대의 전염병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군에서 오랫동안 봉직했던 어느 군의관의 말대로, “한국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에서 국방의학 교육기관이 없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창피한 일이다.”이미 세계적인 대세이다. 국방의학전문대학원(가칭)을 시급히 설립해야 한다.
이종찬 아주대 인문사회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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