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범 김구 선생이 환국 후 가장 감격스레 생각한 일은 1946년 삼의사(三義士) 유해 국내 봉환이었다. 삼의사란 일제에게 사형 당했거나 옥중 순국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의사를 말한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나는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박열 동지에게 부탁했다”고 전하고 있는데, 박열은 1923년 일왕과 왕세자를 폭살시키려 했다는 혐의로 1945년 일제 패망 때까지 투옥되었던 아나키스트였다. 자유신문 1946년 4월 3일자는 “유골은 해방과 더불어 박열, 이강훈 제씨의 주선으로 방금 재일본한인건국청년동맹에 봉안되었”다고 전하는데, 일본에서는 박열과 이강훈, 국내에서는 이문창 등 아나키스트들의 노력으로 부산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6월 15일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수만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추도식은 부산까지 직접 내려간 김구가 주도했다. 다음날 삼의사 유해는 특별열차편으로 귀경하는데, 김구가 함께 탄 특별열차의 이름을 자유신문은 ‘해방자호’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때만 해도 민족정기가 바로 설 희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의사 유해는 수송정 태고사(太古寺)에 안치됐다가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효창공원은 원래 정조의 맏아들이지만 다섯 살 때 요절한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무덤으로 효창원으로 불렸다. 김구는 삼의사 장례식 추모사에서 “그 세 사람을 보낸 나만이 살아 있으면서 아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3열사에 대하여 부끄럽기 한량없고 회한을 금할 수 없다…그들 지하에 불귀의 손이 된 수만 수천의 동지들의 사심 없는 애국의 지성을 본받아 하루바삐 통일된 우리 정부 수립이 실현되기 위하여 3,000만과 같이 분골쇄신 노력하겠다(김삼웅, 백범 김구 평전)”라고 다짐했다.
필자는 몇 년 전 겨울 일본 이시가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 외곽의 노다산(野田山) 기슭에 있었던 윤봉길 의사 암장지를 찾은 적이 있다. 윤의사의 상해 홍구(虹口)공원 의거 때 폭살된 상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은 관동군 사령관과 육군대신을 역임한 거물이었다. 1932년 1월 일본군이 상해를 점령할 때 동원된 부대가 가나자와에 있던 9사단이었는데 이들이 윤봉길 의사를 죽이게 해 달라고 요청해서 윤봉길 의사는 상해에서 가나자와로 끌려와 그 해 12월 19일 사형 당했다. 눈길을 헤치며 겨우 찾은 암장지에는 윤의사가 고국을 떠나며 가족에게 남겼다는 ‘장부는 집을 나서면 돌아오지 않는다(丈夫出家生不還)’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왠지 음산한 기운이 휘감았다. 조금 더 올라가보니 산 중턱 탁 트인 대지에 ‘이시가와(石川)현 전몰자(戰歿者) 묘역(墓域)’이 있었다. 메이지시대 일본 내전 때부터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에서 죽은 일본군들의 묘역이었다. 수많은 일본군 영령들이 떠도는 곳에 윤의사를 암장해 영혼마저 안식할 수 없게 만들려 했던 악의가 바로 읽혀졌다. 일제 식민지배자들은 사적 복수를 허용할 만큼 졸렬했고, 또 윤의사의 영혼까지도 두려워할 만큼 겁에 질렸던 것이다.
삼의사 같은 분들을 ‘순국선열’이라고 한다. 순국선열이란 1945년 8월 15일 광복 전에 순국한 독립운동가를 뜻하고, 애국지사는 살아서 8ㆍ15 광복을 맞은 독립운동가를 뜻한다. 그런데 그렇게 구천을 떠돌던 삼의사의 유해가 봉환된 지 68년이 되는 오늘(11월 17일)이 ‘순국선열의 날’이란 사실을 아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11월 17일은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 당한 날이다. 외교권이 없는 나라는 독립국가가 아니기에 대한제국은 사실상 이때 망한 것이다.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9년 11월 21일 임시의정원에서 11월 17일을 순국선열기념일로 제정하자고 제안했고 임시정부에서 12월 6일에 그대로 결정하고 매년 기념행사를 가져왔다. 해방 후 대한민국이 정상궤도를 걸어왔다면 이날은 당연히 3ㆍ1절 못지않은 국경일이 되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그나마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것도 1997년이었다. 이런 순국선열들의 후손들이 만든 단체가 ‘순국선열유족회’인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단체에 국고 지원이 전혀 없어 극도의 곤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순국선열유족회에서 관리하는 서대문 독립공원 내 ‘대한민국 순국선열 위패봉안관’은 179.45㎡(54평)으로 아파트 한 채 정도 공간에 불과하다. 순국선열의 수를 학계에서는 약 15만명 정도로 보고 있는데 2,835위만 봉안되어 있다. 세계를 전쟁으로 몰고 갔던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여러 침략전쟁 때 사망한 일본군들을 제사 지내는 도쿄의 야스쿠니(靖國) 신사는 9만3,356평의 부지를 갖고 있다. 우리가 순국선열들을 제대로 대우 못하니 A급 전범의 직계후손인 아베 같은 침략자들이 저토록 당당한 것이다. 오늘 오후 2시 ‘순국선열 위패봉안관’ 앞에서 기념행사가 열리는데 대한민국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것은 순국선열을 국격에 맞게 대접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