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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조공(朝貢)

입력
2014.11.1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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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서양세력에 의해 근대적 국제질서로 재편되기까지 동아시아는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가 지배했다. 한(漢)대 이후 중국은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中華思想)에 입각해 주변국들에 조공을 바치게 하고 대신 답례품을 내리고 책봉을 통해 지배권을 인정해 줬다. 이 같은 조공_책봉관계는 형식상 종속 관계의 모습을 띠었지만 꼭 지배예속 관계만은 아니었다. 주변 약소국이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고 경제적 문화적 이익을 얻기 위해 조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우도 많았다.

▦ 조공을 받으면 더 많은 물품을 답례로 주는 게 관례여서 부담이 적지 않았다. 속국은 조공횟수를 늘리고 싶어하고 종주국은 가능한 한 줄이려 했던 이유다. 조선 건국 당시 조선 조정은 명나라에 조공 횟수를 년 3회로 늘리는 게 국호 문제와 함께 큰 과제였다. 결국 조선의 요구가 관철됐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1회를 더 늘려 연간 4차례 조공 사신단을 파견했다. 조공을 굴욕의 관점에서만 볼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조공문제를 둘러싸고 대국의 ‘대국질’ 또한 빈번해 조공에 대한 주변 약소국들의 기억은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다.

▦ 만방래조(萬邦來朝). 모든 나라가 조공을 바치러 중국에 온다는 뜻인 이 말은 한족 왕조 가운데 가장 번성했던 당나라의 위세를 상징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인터넷판인 인민망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끝난 뒤 이 말을 써서 논란을 일으켰다. 정상회의 만찬을 소개하며 “많은 사람이 만방래조를 느꼈다”고 한 대목이다. 패권국으로 부상중인 중국인들의 우쭐함과 중화민족주의가 바탕에 깔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서방 적대세력이 중국위협론을 부추기려고 APEC기간 만방래조 비유를 꺼냈다고 엉뚱한 방향으로 화살을 날렸다. 중국인들이 베이징 APEC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자축하는 것을 못마땅해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당나라의 영화를 떠올리며 패권 제국을 꿈꾸는 심리라면 곤란하다. 신형대국관계론을 앞세워 국제질서 재편을 꾀하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거침 없는 행보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변국들이 많다. 달라진 국력이 국제관계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나 ‘신형대국질’을 반길 나라는 없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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