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은 2011년 취임사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그늘에 묻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사법부에 맡겨진 중요한 사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취임 3년이 지난 지금 대법원의 획일화ㆍ보수화를 우려하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에서 개인의 권리구제보다는 국가의 권한 확대, 노동자의 권익보다는 사용자의 논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진 때문이다.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대법원은 과거사 손해배상 청구시효 제한 판결,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유죄 판결,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 합법 판결 등에서 권력과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통상임금 사건, 제조업체 콜텍의 해고 노동자들과 철도노조 파업 관련 사건에 이어 쌍용차 정리해고 적법 판결까지 모두 사용자나 기업의 편을 드는 판결을 내렸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 보호를 사명으로 삼겠다던 양 대법원장의 각오와는 딴판이다.
대법원 판결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전문가들은 대법관 구성에서 다양성을 기하지 못한 것을 주된 이유로 든다. 판사ㆍ남성ㆍ서울대 일색인 대법관 구성에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그런 획일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진 게 사실이다. 현재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모두가 판사 출신이다. 검사 출신 안대희 대법관과 교수 출신 양창수 대법관이 물러난 빈 자리를 모두 법원 출신이 채웠다. 대법관 중 12명은 50대 이상의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비슷한 연배에 경력도 대동소이한 판사 출신의 대법관들이 얼마나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삶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국회의원 절반에 가까운 146명이 지난주 대법관 절반인 7명을 판사 출신 이외의 법조인으로 임명하자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 또한 이런 사회적 우려와 불만을 반영한 것이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내년 2월 임기가 만료되는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 인선을 놓고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하자는 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서울변협은 이를 감안해 법관 경력이 없는 순수변호사 2명을 후보로 추천했다.
대법원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현실과 다양한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 그러려면 연령과 전문 영역, 경험이 다른 다양한 대법관으로 구성되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변호사와 교수, 인권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독일은 최고재판관을 연방의회에서 선출하도록 해 다양한 직업 출신을 배출하고 있다. 일본도 최고재판관 일부를 비법률가 출신에서 선발한다. 대법원이 민주주의와 기본권 수호라는 기본적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법관 구성의 다양성부터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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