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연기나 잘하라고요? 요즘엔 '멀티'가 통하는 시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연기나 잘하라고요? 요즘엔 '멀티'가 통하는 시대"

입력
2014.11.16 16:04
0 0
강압적인 체벌을 하는 엄마와 고통받는 딸의 갈등을 다룬 영화 '다우더'에서 연출, 각본, 배우 등 1인 3역을 소화한 구혜선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압적인 체벌을 하는 엄마와 고통받는 딸의 갈등을 다룬 영화 '다우더'에서 연출, 각본, 배우 등 1인 3역을 소화한 구혜선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터넷 ‘얼짱’ 스타, 10년 경력의 연기자, 세 편째 장편영화를 연출한 감독, 가수 겸 작곡가, 소설가 겸 화가. 이 모든 건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잘 알려진 배우 구혜선(30)에 대한 설명이다. 그가 세 번째 연출작 ‘다우더’를 내놓았다. 비뚤어진 모성애로 인해 뒤틀린 모녀 관계를 묘사하는 영화로 10월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딸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엄마 역으로는 심혜진이, 엄마의 억압을 피해 도망친 딸 산 역은 구혜선이 직접 연기했다.

6일 개봉한 이 영화는 15일까지 3,200여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하지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인터뷰 내내 껄껄거리며 시원스럽게 웃었다. 첫 연출작 ‘요술’(2010)이 6,000명, 두 번째 영화 ‘복숭아나무’(2012)가 3만 4,000명에 그쳐서인지 “흥행에 대해선 마음을 놓았다”고 했다.

“서른을 넘은 시점에 결혼을 해야 하나, 한다면 아이를 낳아야 하나 고민에 빠지면서 부모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학생 때 친구들에게서 들은 가정폭력 경험담이나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 얘기도 참고가 됐지만 그보다 ‘칠곡계모사건’ 같은 뉴스를 접하며 느낀 분노가 직접적인 계기였습니다.”

강압적인 체벌을 하는 엄마와 고통받는 딸의 갈등을 다룬 영화 '다우더'에서 연출, 각본, 배우 등 1인 3역을 소화한 구혜선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압적인 체벌을 하는 엄마와 고통받는 딸의 갈등을 다룬 영화 '다우더'에서 연출, 각본, 배우 등 1인 3역을 소화한 구혜선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목은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딸(daughter)을 뜻한다. “영화 속 엄마라면 이 단어를 그렇게 읽고 딸에게도 같은 식으로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었단다. 기성 세대에 대한 저항이 담겼다. 영화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담았는지 물었지만 그는 “지금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데 모녀관계엔 전혀 문제가 없다”며 “혹시 오해할까 봐 엄마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남자 친구들을 “패고 다녔”을 정도로 선머슴 같은 말괄량이였던 터라 “엄마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영화에서 엄마와 연락을 끊고 지내던 산은 암 투병 중인 엄마와 다시 만나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이 영화는 물론, 훨씬 밝은 영화들이었던 전작에서도 이야기의 끝엔 늘 죽음이 있다. 구혜선은 “살면서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죽음을 알아야 사는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영화 '다우더' 한 장면
영화 '다우더' 한 장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사는 방식도 바뀌었다.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옷과 장신구를 버렸고 신발도 세 켤레만 남겨뒀다. 이사를 자주 다니다 보면 사놓고 처음 보는 물건을 자주 발견하게 돼서 “쓰지 않는 기간이 긴 것부터 버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갑자기 죽으면 내 방과 짐을 누가 치울까’ 하는 생각에 버린 것도 있고, 함께 사는 개와 고양이 10마리 때문에 버린 것도 있다. 수많은 옷들을 관리할 만큼 “성실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다. 연예인으로서 필요한 옷은 대개 협찬을 받아 입은 뒤 돌려준단다. 3평 크기의 방에 있는 거라곤 책상 하나, 피아노 한 대뿐. 침대가 없어서 텐트를 치고 잔다. 3년 전 차를 판 뒤론 버스를 타고 집이 있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이동한다.

“다른 배우들이 저더러 ‘또라이’라고 해요. 실천적인 또라이. 가장 큰 사치 중 하나가 검소의 사치라고 하잖아요. 검소해지겠다는 생각이 가장 사치스런 생각으로 변질돼서 집에 올 때마다 버릴 게 뭐가 있나 보곤 하죠.”

영화든 소설이든 음악이든 자신의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욕심도 버린 걸까. 구혜선은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안다”며 “그냥 나는 나대로 살고 대중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자유롭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구속이 되기도 하고 자유를 표현하면 할수록 굴레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러다 확 터질 수도 있고 거지 같이 살 수도 있겠죠. 오늘 그만두더라도 아쉬운 것 없이 비굴하지 않고 자유롭고 싶습니다.”

단편 ‘유쾌한 도우미’(2008)부터 영화 연출 경력만 벌써 6년, 자신감이 생겼는지 묻자 그는 다시 껄껄 웃었다. “자신감은 첫 영화에서 가장 충만했던 것 같아요. 선배 감독들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첫 영화를 찍기 시작할 때 자신의 천재성을 느끼고 끝날 때쯤 ‘난 병신이구나’ 한다고요. 첫 영화에서 둘 다 느꼈는지 제게 물으셔서 그렇다고 말씀 드렸죠. 자신감은 그때가 끝인 것 같아요. ‘요술’ 때는 혹평에 충격을 받기도 했죠. 욕을 듣는 것에 적응하다 보니 점점 높은 수준의 욕을 기대하게 되더군요. 내가 나 자신을 까는 거죠. 그런 경지에 오르면 아무도 두렵지 않게 돼요. 이젠 제게 도움이 되는 혹평과 악의적인 얘기를 구분할 줄 알게 됐습니다.”

영화 '다우더' 한 장면
영화 '다우더' 한 장면

구혜선은 팔방미인이라는 칭찬도 듣지만 ‘연기나 잘해라’는 비아냥도 듣는다. 후자에 대해 그는 “절대 동의하지 못하겠다”며 웃음을 싹 거뒀다. “전화만 하려면 스마트폰은 왜 쓰나요. 고등학교에선 왜 12개 과목을 가르치나요. 모두 다 ‘멀티’를 하는 시대에 왜 과거 세대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제가 하는 일은 뿌리가 같아요. 예술이라 한다면 영화도 예술이고 연기도 예술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누군가의 기준으로 이렇다 저렇다 뭐라 할 순 없는 거죠.”

구혜선과의 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진진했다. 청춘 스타로 시작해 한 번쯤은 톱스타의 화려한 삶을 꿈꿨을 텐데 왜 ‘또라이’의 삶을 선택했을까. “더 화려하게 살려면 그럴 수 있었겠죠. 하지만 어떤 삶을 살지는 제가 정하는 겁니다. 어릴 땐 유명해지고 톱스타가 되고픈 야망이 있었죠. 그러다 누굴 위해서 그래야 하는 걸까 생각하게 됐어요. 작품이 잘 되면 주위에서 축하해주고 대중이 환호해주죠.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는 겁니다. 결국 남는 건 외로움과 허무함뿐이에요. 저는 언제 그만둬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그만두는 것도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 영화 '다우더' 예고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