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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학원, 미국에서 쫓겨난 사연

입력
2014.11.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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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교육·문화 교류 명분으로… 아이오와대에 자율운영 허용, 캐나다 대학에는 고압적 자세

美 대학교수평의회도 퇴출 촉구선언… 시카고대, 민감한 이슈 토론 허용 제안에 中 협박성 발언으로 결국 문 닫아

中 공산당의 트로이 목마? 체계상 해외선전 전략조직 아래 배치 "수강생을 첩자로 양성" 주장까지

미국 시카고대는 2010년 6월 1일 중국 정부와 손잡고 공자학원을 개원했으나 지난 9월 운영을 중단했다. 시카고대 제공
미국 시카고대는 2010년 6월 1일 중국 정부와 손잡고 공자학원을 개원했으나 지난 9월 운영을 중단했다. 시카고대 제공
중국 산동성 쿠푸 중국공자재단이 발표한 공자 공식 입상. 신화=연합뉴스
중국 산동성 쿠푸 중국공자재단이 발표한 공자 공식 입상. 신화=연합뉴스

미국 시카고대와 펜실베니아 주립대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지난달까지만 해도 두 대학은 ‘미국 상위 50위안에 드는 동부지역 명문대’(시카고대 4위ㆍ펜실베니아 주립대 48위)라는 정도 말고는 다른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올해 10월부터는 달라졌다. ‘학문의 자유’ 수호를 내세워 중국 공자학원(孔子學院)과 인연을 끊었다는 점이다. 공자학원은 중국 정부가 중국어 교육과 문화 교류를 명분으로 매년 수 억 달러 예산을 지원하며 전세계 120개국, 439개 대학에서 운영 중인 어학ㆍ문화시설이다.

시카고대는 9월25일 ‘중국 정부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고압적 자세를 보였다’며 공자학원의 캠퍼스 내 운영을 중단시켰다. 5년간 지속된 계약을 갱신하는 과정에서 시카고대가 ‘중국 공산당에 민감한 이슈에 대한 토론도 허용하자’고 제안하자, 공자학원 중국 본부의 슈린(許琳) 책임자가 중국 관영 지에팡르바오(解放日報)에 “그 대학이 원치 않으면 우리는 나올 준비가 됐다”며 협박성 발언을 한 게 빌미가 됐다. 이 대학 인류학과 마샬 샤린스 교수는 “시카고대 공자학원에서는 대만과 티베트 독립문제, 톈안먼(天安門) 사태 등은 강의나 학술행사를 열 수 없었다”며 “이는 공자학원이 미국 대학의 학문적 자유를 억압하고, 중국 공산당의 이념과 정치선전 도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시카고대 결정 이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10월 1일에는 펜실베니아 주립대도 공자학원을 내쫓았다. 퇴출 결정에 참여한 교수진은 외부에 구체적 과정을 확인해주지 않고 있으나, 이번에도 이 학원의 경직된 운영방식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학원 운영에 관여했던 에릭 해이요트 교수는 “중국 정부는 환경, 과학, 정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토론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우리 제안을 줄곧 거부했다”며 “그들이 요구한 내용은 우리 대학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중국 교육부 소속으로 공자학원 업무를 총괄하는 중국국가한판(中國國家漢辦)은 두 대학의 조치를 ‘편협하고 예외적인 일’이라고 치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대학운영의 자율성과 학문ㆍ연구의 자유를 유난히 중시하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올 가을 들어 공자학원을 배척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표사례가 ‘미국대학교수평의회’(AAUP)의 공자학원 퇴출 촉구선언이다. AAUP는 시카고대가 공자학원을 몰아내기 두 달 전인 올해 7월 공자학원을 유치한 주요 대학에 ‘공자학원의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중국 정부와 재협상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헨리 라이만 AAUP 부회장은 “공자학원이 미국 대학에 필요 없는 존재라는 판단을 내린 곳은 시카고와 펜실베니아 주립대만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로 재정상황이 악화된 일부 미국ㆍ캐나다 대학과의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중국의 고압적ㆍ기회주의적 행태도 잇따라 폭로됐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국가한판은 캐나다 맥마스터대에는 ▦파룬궁 관련자 강사임용 금지 ▦강의주제 제한 조치를 취한 반면, 미국 아이오와대와 계약할 때는 대학 당국의 자율운영을 허용했다. 거점을 구축할 필요성이 높은 대형 공립대학에는 많은 양보를 하면서도, 이용가치가 적은 캐나다 대학에는 고압적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맥마스터대는 온타리오 법원에 고용차별 혐의로 피소됐고, 중국 정부가 공자학원 운영 규정을 바꾸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결국 학원을 폐쇄시켜야 했다.

반(反) 공자학원 흐름이 미국 대학과 그 주변에서 급속히 확산되는 기저에는 중국에 대한 안보불안 심리가 깔려 있다. 구체적 증거를 적시하지 않으면서도, 공자학원이 해당 대학사회의 중국관련 연구 정보를 캐내거나, 중국인 학생의 반정부 활동을 감시하는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어를 배우러 방문한 미국, 캐나다 시민을 상대로 군사와 산업분야의 첨단 정보를 빼내거나, 심지어 수강생 중 일부를 중국을 위해 활동할 첩자로 양성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캐나다 보안정보국(CSIS)에서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담당 국장을 지낸 마이클 쥬노 카추야는 “캐나다 대학에 침투한 공자학원은 캐나다 정부와 사회에도 위협 요소”라며 “공자학원은 오래 전부터 서방국가 첩보당국의 감시대상 목록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자학원은 중국 공산당이 서방에 침투시킨 ‘트로이 목마’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공자학원을 준 첩보조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그 근거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중국 정부와 공산당 주장이 액면 그대로 담긴, 그래서 지극히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재다. 중국국가한판은 최근까지 한국전쟁에 관한 만화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려 놨는데, 그 내용은 ‘미국ㆍ남한의 위협을 막기 위해 참전했다’는 시대착오적이다. 이를 최초 발견한 런던경제대 교수들의 지적으로 홈페이지에서는 삭제됐으나, 이 영상물은 여전히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다. 진실을 모르는 미국인 수강생에게 어학교재를 통해 잘못된 정보를 주입시키고, 장기간에 걸쳐 중국 정부 논리에 동조하도록 만들어 결국에는 이들 중 일부를 정보원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공자학원이 지휘 체계상 중국 공산당의 해외선전 전략조직 밑에 배치된 점도 이런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 정권에서 여성 가운데 최고서열인 류옌둥(劉延東) 부총리가 직접 업무 관장할 정도로 중국의 해외선전 전략의 중요한 창구로 인식되고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2012년 6월 미국 국무부가 공자학원에 파견된 중국인 강사들의 비자문제를 거론해 외교문제로 비화됐던 것도 미국이 내심 안보위협으로 여기고 있다는 걸 반증한다”고 말했다. 당시 국무부는 J1(대학교환 방문) 비자로 입국한 강사들이 공자학원에서 미국 초ㆍ중ㆍ고생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었다.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이 공자학원 수강을 통해 은연중 중국 논리에 전염될 가능성을 견제하려는 조치였다는 해석이다.

미 국무부는 이후 중국의 강력한 반발로 비자문제를 더 이상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조지워싱턴대 공자학원의 몰리 로크 코디네이터도 “지난해 문을 연 우리 공자학원도 일반인 수강생은 물론이고 청소년 대상의 중국어 강의를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이런 비판에 대해 공자학원 본부의 슈린 책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공자학원은 당연히 ‘트로이 목마’가 아니다. 우리는 손에 무기를 들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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