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향기는 가공된 것 아닌
공간의 역사성ㆍ사회성 밴 것
사라져 가는 향기 보존 필요
역한 냄새에 남성은 잘 견디고
여성들은 격한 반응 보일 뿐
후각 감지엔 남녀 차이 없어
영국에 본사를 둔 한 바디용품 업체 사장은 낯선 도시 기차역에 내려서도 향기만으로 자기네 매장을 찾아갈 수 있노라 자랑하곤 한다. 자사 제품 향기의 독특함과 CEO로서의 자질 혹은 열정을 과시하려는 허풍일진 몰라도 그게 전혀 터무니없는 말만은 아니다. 코감기가 걸렸을 땐 요리는 안 한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우리가 맛이라고 아는 감각의 80~90%가 실은 향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영국의 도시 디자이너 빅토리아 헨쇼(Victoria Henshaw)는 향기가 공간ㆍ건축 디자인의 주요 변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랜드마크(Landmark)’가 한 공간의 개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듯이 후각적 특성의 ‘스멜마크(Smellmark)’도 있다고 했다. 저 바디용품 사장이 좇았던 것, 아니면 젓갈시장이나 꽃상가의 전형적인 냄새가 그 예다. 우리가 냄새만으로 바닷가 마을과 서울 같은 대도시를 구분할 수 있다면 그 구분을 가능케 하는 특징적인 냄새도 스멜마크다. 도시 안에서도 도심과 변두리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후각이 아주 예민하거나 특정 공간의 냄새에 익숙한 이라면 동대문시장 냄새와 남대문시장 냄새를, 또 남대문시장 신발상가와 의류상가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시각적 아름다움과 편의 못지않게 좋은 향기를 지닌 공간을 생각하자는 게 헨쇼의 주장이었다. 그에게 좋은 향기란 가공된 향기가 아니라 그 공간의 역사성과 사회성이 밴 시간과 사연의 향기다.
21세기의 도시들은 그 세월과 사연의 향기를 잃어버렸다. 아니 애써 버렸다고 해야 한다. “고전주의 시대 이후 후각은 시각(미술)이나 청각(음악) 같은 ‘고상한 감각(noble senses)’에 비해 천한 (화학적)감각으로 치부돼왔다. 냄새란 극히 최근까지도 분석될 수도 기록될 수도 없는 감각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Wired’ 인터뷰) 현대화ㆍ도시화가 확산되면서 냄새는 좋든 궂든 구질구질한 옛 흔적이었고, 몰아내고 차단해야 할 부정적인 무엇이었다. 그렇게 비워진 옛 냄새의 자리는 방향제나 커피 향기 같은 걸로 채워졌다. 복제된 도시들은 시각적인 개성과 함께 후각적 정체성도 잃어버렸다는 것이 헨쇼의 문제의식이었다.
그는 도시를 설계하고 건설할 때, 특히 기존 공간을 재생할 때 지금껏 모두가 무시해 온감각들, 특히 후각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공간 이미지를 수용할 때, 또 살아가면서 누리는 삶의 질을 보더라도 후각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음악이든 새소리든) 어떤 소리가 들릴 때와 안 들릴 때 공간의 인상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말한 음향 생태학자 배리 트루액스(Berry Truax)의 말처럼, 후각 역시 공간에 대한 인지적 이미지를 새롭게 열어주는 중요한 요소다.”(‘edible Geography’인터뷰)
헨쇼는 시민과 도시계획 전문가, 건축가 등을 이끌고 ‘향기 산책(smell walk)’을 다니곤 했다. 도시의 구석구석 골목골목을 누비며 향기를 맡고 그 향기를 주제로 대화하는 거였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오래된 돌담에 코를 박고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낯선 향기를 맡게도 하고, 음식점 거리를 지날 때면 눈을 감고 후각으로만 공간의 느낌을 감각하게도 하고, 골목길을 내려가면서 도심을 스쳐온 바람의 냄새를 감지해보게도 했다.
그로선 그 산책이 연구 및 자료조사의 과정이었지만, 참가자들에게는 도시의 후각적 감각 공간을 확장하는 체험이었다고 한다. 한 향수 관련 정보 사이트(Odette toilette.com)의 운영자는 그 감각 경험을 “시간의 소요ㆍ騷擾(riot of time)’라 표현했다. “행인들에게는 우리가 살짝 미친 사람들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우린 그런 시선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헨쇼는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 돈캐스터, 미국 뉴욕 시애틀 등 세계의 주요 도시를 누비며 향기를 찾아 다녔다.
그런 뒤 ‘향기 지도’를 그렸다. 개별 공간의 특별한 향기, 즉 스멜마크를 지도화한 거였다. 색이나 형태, 소리와 달리 향기는 덧없이 사라지고 미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사적인 감각이다. 그가 그린 향기의 지도는 ‘edible Giography’편집자의 말처럼 “순전히 개인적 순간적 경험의 기록”일지 모른다. 하지만 헨쇼는 다양한 현지조사와 인터뷰를 근거로 “향기 지도의 (객관적)기록은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나의 인터뷰는 대개 낮에 이뤄진다. 하지만 인터뷰이 대부분은 낮 동안의 일시적인 냄새보다 밤의 안정적인 냄새, 즉 그들이 그 지역에 살면서 장기간 감각해온 고유의 냄새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대륙별 도시별 거리별 ‘세계의 향기지도(Global Smell Map)를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ㆍ시민 참여) 방식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고, 2012년 3월 자신의 블로그(smellandthecity.wordpress.com)를 열었다.
헨쇼는 개인의 후각 취향에 대한 보편적 오해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정 냄새, 예를 들어 생선 비린내를 싫어한다는 이들도 산책 도중 어시장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싫지 않다고 말하곤 한다. 그건 그들이 생선 비린내를 시장이라는 공간 체험의 일부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어시장에서 생선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하다는 걸 받아들인 것이다.” 후각 자극이 적절한 ‘체험의 맥락’안에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게 된다는 것, 즉 어지간히 비린내를 싫어하지 않는 한, 인공 라벤더 향기로 절여진 어시장보다는 비린내 밴 어시장을 좋아한다는 얘기다.
후각 자극에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민감하다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남녀간에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역한 냄새를 맡았을 때 남성들은 대충 참는 반면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격한 거부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돼온 것일 뿐, 실제 현장 조사에서 후각 자극을 감지하는 능력과 수용 반응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13,14세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성별 후각 자극 민감도에 차이가 없었다. 그는 “여성이 더 민감하다고 느끼는 것은 사회화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즉 늦은 밤 유흥가나 후미진 골목을 지나갈 때 남자와 여자의 반응이 다르듯이, 위험한 지역의 후각적 특성이 성별 후각 반응의 차이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냄새와 관련된 이런 다양한 연구 소재는 무궁무진하고, 그 연구의 결과가 도시 계획과 공간 배치 등에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냄새나 향기가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 연구는 일찌감치 시작됐다. 미국의 카지노 도시 라스베가스의 호텔들이 환기시스템을 통해 ‘운명의 정수(Essence of Destiny)’같은 향수를 뿜어대거나 슈퍼마켓에서 훈제 베이컨 냄새를 내보내 신선식품 매출을 신장시키는 것처럼 후각이 마케팅에 활용된 예도 흔하다. 헨쇼는 미국의 한 우유업체가 샌프란시스코 버스 정류장 우유 광고판에 쿠키 향기를 분사하는 장치를 설치했다가 주민들의 항의로 철거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의 감각, 특히 후각은 알게 모르게 조작되고 있다”고 말했다.(가디언, 2014.4.1)
헨쇼는 1971년 4월 28일 영국 요크셔 남부 로더햄에서 태어났다. 리즈(leeds) 메트로폴리탄대학에서 소비자관리학을 전공했고, 94년 졸업한 뒤 13년여 동안 몬캐스터 메트로폴리탄 자치위원회 도시관리ㆍ재생센터에서 일하며 매니저까지 지냈다. 그는 남부 요크셔 디자인ㆍ건설센터를 설립해 센터장을 맡았고, 돈캐스터 의회의 도시 디자인 자문역으로도 활약했다.
일을 하면서 그는 도시재생 과정 석사학위를 딴 뒤 2007년 샐포드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한다. 거기서 도시의 음향 및 소음분야 전문가인 트레버 콕스 교수를 지도교수로 만나, 도시 디자인에서 감각적 고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도 도시 디자인에서 냄새의 역할이 주제였다. 도시의 냄새가 시민들에게 미치는 인지적 감정적 효과, 시민들의 행동과 태도 그리고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 그는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석사과정 학생들의 논문을 지도하며 사실상 자신이 개척한 후각적 도시 디자인 분야의 연구에 매진했다.
건축가 허브 엘레나는 보이지 않는 건축(Invisible Architecture)이란 책에서 냄새를 ‘건축의 어두운 면’이라고 표현했다. 건축 과정에서 냄새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 요소여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의미였다. 헨쇼는 냄새라는 ‘건축의 어두운 면’이 도시 공간 구성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름답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축물을 법으로 보존하듯이 도시의 어떤 향기들은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영국 주요도시에 있던 위스키 등 술 양조장과 발효시설들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남으로써 도시들이 제 향기를 잃어버린 사례를 그는 안타까워했다. “거기에는 윤리적 의미도 담겨 있다. 나는 공공장소에 그 장소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합성향료를 뿌려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도시가 법으로 소음을 통제하듯이 보존 가치가 있는 도시의 향기를 유지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정책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절풍 등 바람의 흐름을 살펴 공공시설 등 건물을 배치하는 데서부터 냄새의 발생 거점을 보호하는 데까지 세심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도시 디자인에 후각을 반영하는 일이 편의나 비용 면에서 부정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가령 배기가스를 뿜어내는 버스정류장이나 교통 신호등을 주택가에서 얼마나 멀리 두느냐 하는 문제가 그 예일 수 있다. 가로수를 많이 심으면 신호등이나 방범 CCTV를 설치ㆍ관리하는 데 차질을 빚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사라져가는 향기를, 유물처럼 보존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예컨대 우리가 박물관 같은 데서 중세의 감옥을 체험할 때, 중세 감옥의 향기를 재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감각적으로 훨씬 풍부하게 그 공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역한 오줌 냄새를 향수처럼 합성해 활용함으로써 고객 유인효과를 톡톡히 본 호러테마관의 예와 함께 그는 영국의 전통적인 간이주점 펍(pub)에 대해 말했다. “오래된 펍(Pub)에서 풍기던 고유의 냄새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 냄새는 체취와 술ㆍ안주 담배 냄새 등이 뒤섞여 나오던 냄새다. 금연정책이 시행되면서 그 냄새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는 해무(海霧)와 바다 향기로 유명한 홋카이도의 쿠시로, 인형제조 장인들이 밀집해 아교 냄새가 풍성한 나라현의 야마토코리야마 거리 등 ‘좋은 향기를 지닌 100곳’을 선정, 보호해온 일본의 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샤넬 향수 ‘No.5’의 주재료인 재스민을 공급하는 남프랑스 그라스도 멋진 ‘향기 풍경(smellscape)’을 가꾼 사례로 꼽았다. 도시 전체가 자스민의 향기나 향수 병 모형으로 꾸며져 있고, 실제로 샤넬 향기를 뿜어내는 분수도 있다고 한다.
빅토리아 헨쇼는 지난 10월 13일, 암으로 숨졌다. 향년 43세.
도시 디자인과 후각을 결합시킨 그의 분야는 사실상 그가 개척한 분야다. 도시의 국지기후 관련 세미나에서조차 열섬현상 같은 순수 기상환경적 주제들만 논의돼온 현실에서 그의 문제제기는 다양한 후각적 요소들, 예를 들어 기온과 냄새의 상관관계, 폭우와 하수구 냄새의 변화 등의 연구 필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헨쇼는 가장 쾌적한 실내 기온이 온도계 눈금에만 좌우되는 게 아니라 냄새 자극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굴착공사 등으로 야기되는 도시의 짜증스러운 진동과 오감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뒀다.
지난 6월 23일 헨쇼는 뉴욕타임즈에‘여름의 도시로부터 당신의 코를 돌리지 마시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 글에서 그는 냄새로 본 뉴욕의 구역별 문화적, 사회학적, 역사적 특징들을 소개한 뒤 “(쓰레기 더미에서 악취가 풍기더라도) 코를 잡지 마시라. 그 냄새를 세심히 맡고 분석해보면 도시 경험의 새로운 차원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마이클 블룸버그 전 시장이 재임 중 심은 수십 만 그루의 가로수를 거론하며 이렇게 썼다. “도시의 심장부라고 하더라도 자연은 완전히 패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블룸버그가 심은 나무 중에는 약 200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고, 당신은 그 역한 은행 열매의 냄새를 잊지 못할 것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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