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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나 본 MLB '전설의 끝판왕' 리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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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나 본 MLB '전설의 끝판왕' 리베라

입력
2014.11.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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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즌 방망이 44개 부러뜨려… 국내선 손승락 정도만 구사 가능

언제나 연습=실전 생각 가져야… 면도날 제구도 반복훈련 결과

마리아노 리베라 글러브와 책. 고영권기자youngkoh@hk.co.kr
마리아노 리베라 글러브와 책. 고영권기자youngkoh@hk.co.kr
리베라는 '둥근톱날'로 불리는 자신의 주무기인 '커터' 잡는 법을 국내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의 커터 잡기는 일반 투수의 포심 잡기와 같았다. 커터는 슬라이더처럼 좌타자 무릎방향으로 휘지만 변화는 덜한 대신 속도는 속구와 비슷해 타자 입장에서 치기 어렵다. 리베라는 전성기 때 97마일(157km)의 속구에 커터는 95마일(153km)까지 던졌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리베라는 '둥근톱날'로 불리는 자신의 주무기인 '커터' 잡는 법을 국내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의 커터 잡기는 일반 투수의 포심 잡기와 같았다. 커터는 슬라이더처럼 좌타자 무릎방향으로 휘지만 변화는 덜한 대신 속도는 속구와 비슷해 타자 입장에서 치기 어렵다. 리베라는 전성기 때 97마일(157km)의 속구에 커터는 95마일(153km)까지 던졌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메이저리그 전설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가 13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기자를 포함한 사회인 야구선수들에게 투구동작을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메이저리그 전설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가 13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기자를 포함한 사회인 야구선수들에게 투구동작을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한 눈에도 신장이 180㎝인 기자와 비슷해 보였다. 메이저리그 공식 프로필에 나와 있는 188㎝(6.2피트)와는 분명 차이가 났다. 체격도 우람함과는 거리가 먼 마른 편이었다. 코리안특급 박찬호 선수처럼 하체가 유달리 발달한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셔츠에서 은근히 드러나는 그의 팔과 가슴에서 탄탄함과 유연성이 느껴졌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1년이 넘었지만 군살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기자보다 한 마디는 더 있어 보이는 손가락에선 굳은살이 여전히 도드라져 보였다. 마리아노 리베라는 전설의 마무리 투수답게 은퇴 후에도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는 모양새였다.

12일 서울 영등포동에 자리잡은 타임스퀘어 1층 로비 아트리움에는 말 그대로 구름관중이몰렸다. 한국을 처음으로 찾은 리베라를 보겠다고 몰린 팬들로 1,480㎡(약450평) 면적이 가득 찼다. 행사 주최측인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타임스퀘어 최대 수용인원인 500명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리베라는 만원관중을 아랑곳하지 않고 공식 인터뷰를 가진 후 기자를 포함한 20여명의 사회인야구 선수들에게 19년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투구를 전수했다. 652번의 위기를 모면해 세이브를 기록한 것처럼 이런 낯선 환경은 그에겐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에 40분이 할당된 원포인트 레슨 시간을 예정보다 10분 초과했다.

리베라는 레슨 시작에 앞서 투구할 때 마음자세를 강조했다. “가볍게 공을 주고 받더라도 목표를 가지고 해야 한다. 언제나 자신이 연습한 것을 실전에 적용한다는 생각을 갖고 해야 한다. 반복해서 훈련하는 게 결국 실전에서 발휘되는 법이다.”

리베라는 왼쪽 다리를 들어올리며 투구 폼도 찬찬히 설명했다. 우선 투구 시 포수를 향해 상체를 곧게 펴 일직선으로 따라가 최대한 앞에서 던지라고 했다. 단순하게 팔을 들어올려 상체를 좌우로 회전하며 공을 빨리 놓지 말라고 강조한 것. 만일 이렇게 던질 경우 어깨가 빨리 열려 공에 힘이 실릴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투구를 하나의 리듬으로 생각하고 균형을 항시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투구의 기초가 되는 하체를 단단하게 다지며 투구 폼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좋은 투수가 되려면 항시 좌우 코너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하며, 바깥쪽(우타자 기준) 공을 살릴 수 있도록 타자 몸 쪽에 정확히 던져 타자를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베라의 면도날 제구는 꾸준한 반복 연습밖에 없었던 셈이다. 투구 기초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리베라는 자신의 주무기이자 ‘커터’로 알려진 컷 패스트볼(Cut Fastball)을 국내 처음으로 공개했다. 전문 선수에 비해 실력이 미천한 사회인 야구선수들에게도 아낌없이 그의 비법을 털어놓은 것이다. 커터는 슬라이더처럼 TV화면에서 볼 땐 좌타자 무릎방향으로 휘지만, 30~45㎝ 가량 움직이는 슬라이더에 비해 변화가 덜한 대신 구속이 직구와 비슷하다. 그러나 리베라의 커터는 그 움직임이 보통투수에 비해 3배 가량 많은 12~15cm에 달한다. 더욱이 리베라는 전성기 시절 97마일(157㎞)의 직구에 커터는 95마일(153㎞)까지 던졌다. 타자로선 그가 던진 볼이 직구인지, 커터인지 분간이 어려운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 선수의 직구 구속이 잘 나와야 95마일인 것을 보면 그야말로 손댈 수 없는 ‘언터쳐블’일 수밖에 없는 것. 리베라표 커터는 메이저리그 한 시즌 동안 타자 방망이 44개를 박살(2001년 기록)낼 만큼 공포의 마구 ‘둥근톱날(buzzsaw)’이라고 불린다. 1999년 월드시리즈 때는 라이언 클레스코(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배트를 연속 3개 부러뜨리기도 했다. 국내에선 넥센 마무리 투수 손승락이 구사할 뿐 아직까지 제대로 커터를 던지는 투수를 찾기 힘들다. 박찬호도 2010년 뉴욕 양키스 소속일 때 리베라에게서 커터를 전수받을 정도로 투수라면 누구나 탐내는 구질인 셈이다.

리베라표 커터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립을 속구, 즉 포심패스트볼과 동일하게 잡아야 한다. 검지와 중지를 볼의 솔기(실밥) 4개를 가로질러 잡고 엄지를 이 두 손가락의 가운데에 놓으면 그립이 완성되는 셈. 기존 투수들이 포심그립에서 약간 우측으로 비틀어 잡는 것과 달랐다. 리베라의 경우 손이 커 검지와 중지 사이를 붙였다. 그리고 슬라이더나 다른 변화구와 달리 손목을 전혀 쓰지 않고 그냥 속구 던지듯 투구하면 된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그립을 잡을 때 10도 가량 손목을 안쪽(손등이 하늘방향 기준)으로 틀고, 중지에 강한 힘을 줘야 한다는 점이다. 리베라는 “속구와 같은 회전이 손가락을 빠져나갈 땐 걸리지만 좌타자 무릎 방향으로 살짝 휘기에 타자들 시야에서는 직구로 보여 어김없이 방망이를 휘두른다”고 말했다. 리베라가 남들과 다른 커터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손가락 악력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리베라는 자서전 ‘더 클로저(The Closer)’를 통해 “소년시절 어부였던 부친과 함께 매일 고기잡이 배에 올라 작살로 생선을 잡다 보니 강인해졌다”고 회고한다.

자아성찰이 리베라 강심장의 근원

9회말 2아웃부터라는 격언처럼 순간 승패가 갈리는 게 야구의 묘미다. 그런 위기를 등판 때마다 겪는 게 어쩌면 마무리 투수의 숙명이다. 이 때문에 마무리 투수의 자질로 항시 거론되는 게 구질, 컨트롤 외에 강인한 심장이다. 리베라는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양키스의 조용한 킬러’라고 뉴욕타임스가 표현한 것처럼 마운드에서 표정변화가 없는 냉철한 투수로 정평이 나 있다. 리베라는 현역시절 공 하나에 승패가 갈리는 상황에서도 “공을 잡는다. 던진다. 그리고 샤워를 한다”고 마무리 역을 단순화시켜 흔들리지 않으려 했다. 둔할 만큼 우직한 리베라의 평정심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의 글러브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사용했던 글러브 엄지부분에는 이름과 함께 ‘PHIL 4:13’이 새겨져 있다. 성경 빌립보서 4장13절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란 의미다. 신부를 꿈꾼 독실한 가톨릭 신자답게 하늘을 믿고 자신을 이끈다는 것. 리베라는 “지더라도 스스로를 컨트롤해 다음 경기를 준비한다. 그리고 몸이 덜 풀렸더라도 100% 준비가 됐다고 스스로를 믿고 던진다”고 했다.

리베라는 기자회견, 팬미팅, 원포인트레슨, 강연의 강행군 속에서도 “안녕하세요, 사랑해요”등 준비한 한국말에, 미소도 보이긴 했지만 무표정 속에 피곤한 모습도 비쳤다. 하지만 미래 꿈나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는 항시 진지했다. 2014년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한상훈과 유준하(배제중) 선수에게도 “나는 12살 때부터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꿈을 키웠다. 계속 이기는 모습을 보이려면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수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생 마무리는 봉사와 함께

가르침에 큰 관심을 보인 리베라였기에 은퇴한 운동선수들이 밟는 지도자로 제2 인생을 시작할지가 궁금했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답을 피한 리베라는 대신 봉사를 화두로 꺼냈다. 그는 “선수시절 받은 혜택을 환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했다. 메이저리그에선 힘든 일정 때문에 고소득을 올린 선수들이 코치나 감독 등 지도자를 선호하지 않기에 그도 같은 생각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함께 방한한 뉴욕 양키스 인사는 “은퇴 후 자신을 사랑하는 팬이 있는 다양한 국가를 다니고 있는 리베라가 빼놓지 않는 게 봉사였다”고 했다. 리베라는 자신이 설립한 리베라 재단을 통해 미국과 파나마의 불우아동을 돕고 있고, 최근에는 아내와 함께 교회를 짓고 있다. 리베라는 기자에게 “은퇴한 지금은 마운드가 아닌 일상에서 세이브할 기회에 놓여 있다”면서 “이제는 기꺼이 사회의‘클로저’로서 인생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메이저리그는 훌륭한 마무리 투수를 잃었지만, 사회는 대신 훌륭한 봉사자를 새로 얻게 된 것이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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