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 노출된 신고자가 고소
담당 변호사, 공안기관과 갈등
민변 "검찰의 길들이기 의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병현)는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여간첩 사건 조작 의혹을 제기한 SBS TV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프로듀서(PD)와 해당 사건의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인을 고소한 사건이 접수돼 서울경찰청 보안2과에 내려 보내 수사하도록 지휘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그것이 알고 싶다’는 7월 26일 방송된 ‘아가와 꼽새, 그리고 거짓말-여간첩 미스터리’편에서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탈북자 이모(39ㆍ여)씨를 간첩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을 신고한 사람이 최모씨라는 내용이 담긴 국정원 수사보고서가 노출됐다. 최씨는 방송 직후 “이름이 공개돼 명예가 훼손됐으며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담당 PD와 민변 소속 장경욱ㆍ박준영 변호사 등을 검찰에 고소했다.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간첩 신고자의 신원이 방송으로 그대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경찰로 사건을 보내 수사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장 변호사 등이 수사 기록을 방송사 쪽에 제공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이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검사가 증거로 제출할 서류 등을 사건 또는 소송 준비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타인에게 교부 또는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장 변호사 등이 소송이 아닌 방송을 목적으로 PD에게 수사기록을 건넸다면 이 규정에 근거, 당연히 처벌된다는 게 수사당국의 생각이다. 경찰은 최근 고소인 최씨를 소환 조사하고 사건 관련자의 이메일과 휴대폰 통화 내역을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 변호사 등이 속해 있는 민변 측은 조심스런 입장이다. 민변 관계자는 “내용을 확인하고 있고,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를 받고 있는 변호사와 민변이 최근 검찰과 국정원 등과 갈등을 빚어왔다는 점에서 이번 수사가 ‘민변 길들이기’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장 변호사 등은 국정원과 검찰의 증거 조작 파문을 일으킨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과 1심 무죄가 선고된 ‘직파 간첩 홍모씨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검찰은 최근 민변 소속 권영국 변호사 등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하고 장 변호사 등 민변 변호사 7명을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 신청하기도 했다. 한 민변 소속 변호사는 “검찰과 경찰이 내세우는 형사소송법 조항이 실제 적용돼 처벌한 사례가 극히 드문,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검찰의 의도를 알 수가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검찰의 잣대라면 진행 중인 재판 기록을 이용한 언론 보도는 모두 처벌 대상이라는 것이고, 이번 수사가 그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조작 의혹을 제기한 이모씨 간첩 사건은 지난달 15일 이씨에게 징역 3년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지면서 종결됐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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