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간 개인사업자 거래로 위장
복귀명령ㆍ보상 없이 자산 편입 결정
직원이 통장 내놓지 않자 횡령 고소
항소심 "유치권 준해" 직원에 무죄
대기업이 과도한 사업 확장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직원을 ‘바지사장’으로 고용해 꼼수를 부리다 재판에서 졌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상준)는 이랜드리테일의 공금을 빼돌린 혐의(업무상 횡령) 등으로 기소된 이 회사 소속 유모(46)씨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랜드는 2004년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산지에서 직접 과일을 구매하기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과도한 사업 확장’이라는 비난이 예상되자 당시 산지 직거래팀 소속의 유씨에게 개인사업자로 활동하며 회사에 과일 등을 공급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유씨는 회사로부터 가지급금 등의 형태로 208억원을 받아 제주도 감귤과 안동 사과 등을 구입해 공급했고, 이를 통해 이랜드는 41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당시 이랜드는 모든 거래를 법인계좌가 아닌 유씨와 유씨 부인의 개인 명의 계좌를 이용했고, 과일을 선별해 포장하는 선과장(選果場) 역시 유씨 부인 명의로 설립했다. 문제는 이랜드가 2009년 유씨 부인 명의의 선과장을 다시 회사 자산으로 편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발생했다. 회사 복귀 명령과 보상 없이 또다시 새로운 청과산지를 개척하라는 지시만 받은 유씨는 선과장과 예금통장의 반환을 거부했다. 이후 이랜드는 2011년 6월 유씨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1심 재판부는 “선과장이 회사 자금으로 운영됐고 유씨의 개인 자산이 투입되지 않았다”며 유씨의 혐의를 인정,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대기업에 대한 비판을 우려해 사업자 명의 등을 차명 처리했을 뿐이라는 회사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통장의 자금에 회사가 지급한 비용과 유씨가 노력해 취득한 이익이 혼재돼 있다”며 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씨가 통장 잔액과 설비 반환을 거부한 것은 공로에 대한 보상이나 비용상환 등의 정산을 요구하는 수단으로 유치권에 준하는 권리를 주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유씨의 태도나 의사가 불법영득 의사로까지 연결될 정도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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