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생존 작가가 쓴 노화ㆍ죽음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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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생존 작가가 쓴 노화ㆍ죽음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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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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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아메리 지음ㆍ김희상 옮김

돌베개ㆍ219쪽ㆍ1만2,000원

시간이란? 누구나 전적으로 홀로 소유하면서도 손에 쥐어지지 않는 것. 고통인 동시에 희망. 정밀하게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지성을 비웃으며 달아나는 실체 없는 실체. 그러면서도 우리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것.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중얼댄다. “시간 참 빠르다” 혹은 “세월 참 덧없다”.

늙어갈수록 시간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저자 장 아메리는 시간의 이 얄궂은 속성을 깨닫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돌연 수풀에 덮여 있던 과거의 무게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을 맞이하며 뒤통수를 얻어 맞은 양 화들짝 놀란다.” 아마도 그건 우리가 ‘늙었음’, 혹은 ‘늙어가고 있음’을 알아채는 찰나일 테다.

그렇다면 ‘늙어감’은 뭔가.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본 거울 속 내 얼굴, 유난히 눈가 주름이 확연하다. 손등엔 노란 반점이 늘었다.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늙어감의 징표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부정하고 부인하다 이제는 더 이상 인정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때 눈에 들어오고야 만다.

아메리는 그때의 감정을 분석해보려고 한다. ‘증오’는 너무 나간 표현이다. 늙음이 옳지 않은 건 아니니까. 아니면, ‘혐오’? 늙었다고 혐오까지 해서야 되겠나. 게다가 아직은 봐줄 만 한데. 그렇다면 ‘권태’는 어떨까. 그래, 인생은 더 이상 우리에게 베풀기를 거부하는 권태에 빠진 게다. 아메리는 “거울 속 자신에게 빠진 사랑은, 황홀함을 선물하는 사랑이 아니라 권태사랑, 곧 권태가 자신을 연민하는 나머지 그 사랑마저 깊은 권태에 사로잡힌 바로 그런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인정과 부인, 그 속에서도 인간이 놓지 않는 본능인 나르시시즘까지 고려한 정의다.

어느 날 갑자기 느껴지는 거울 속의 ‘늙은 나’. 장 아메리는 낯설지만 익숙한, 그러면서도 나르시시즘이 발동하는 그 순간을 ‘자기 권태’라고 표현했다. 그림은 베르나르도 스트로치의 ‘늙은 바람둥이 여인’(1630년ㆍ모스크바 푸슈킨 미술관). 여인이 바라보는 거울 속 모습은 실제의 자신보다 젊다.

이 대목에서 아메리의 서술은 인간의 심리를 적확하게 꿰뚫어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 권태를 이루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자기소외, 곧 오랜 세월 동안 지녀온 젊은 나와 거울에 비친 늙어가는 나 사이의 불일치다. 그러나 (거울 속 나에게서) 소외를 느끼는 바로 그 순간, 거울을 응시할 뿐 화를 내지는 않는다. 이내 거울에 등을 돌린다. 화를 낸다면 이는 타인의 분노일 뿐이니까.”

‘늙어감에 대하여’는 아메리의 철학 사전이다. 시간, 노화, 죽음, 몸 등에 대해 자신만의 사유와 통찰로 얻어낸 정의를 풀어놨다. 아메리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뭘까. 그는 ‘근원적 모순’이라고 적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정을 포괄하는 ‘절대적 부정’이라는 얘기다. 어떤 것이 더는 존재하지 않음을 경험하는 게 죽음이라서다. 다시 말해 ‘나이 먹음’은 ‘존재하지 않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처럼 냉정하리만치 객관적인 기술이 어떻게 가능할까 놀랍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아메리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가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한스 차임 마이어. 본명과 함께 조국도 버린 그는 벨기에로 건너가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게슈타포에 체포돼 강제수용소를 전전하다 살아남았다. 그는 나치의 유대인 절멸을 알린 대표적인 증언작가이기도 하다. “나는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게 두려웠다”는 책의 대목에서 고문을 당하며 그가 느꼈을 환멸과 고통이 어렴풋이 짐작된다. 그래서 ‘죽어가는 두려움’ 대신, ‘죽음’ 그 자체를 택한 걸까. 예순여섯이던 1978년 잘츠부르크의 한 호텔방에서 그는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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