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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금 타먹는 찌꺼기..." 英 하층민 경멸 풍조 어디서 시작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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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금 타먹는 찌꺼기..." 英 하층민 경멸 풍조 어디서 시작됐나

입력
2014.11.1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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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 존스 지음ㆍ이세영 안병률 옮김

북인더갭 발행ㆍ428쪽ㆍ1만7,500원

노동조합 활동가인 저자

하층계급 공격 행태 적나라한 고발

가난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돌린

80년대 대처리즘이 온상 주장

차브(chavs)는 영국에서 “무식쟁이 하층계급”을 뜻하는 신조어다. 영국사회에서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차브를 공격하는 법’ ‘차브를 마주치지 않는 루트가 담긴 여행상품’ 등 이들에 대한 비아냥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주류인사들은 차브를 ‘복지 식객’이라며 비난하고 조롱한다. 그렇다고 차브가 불한당이거나 세금에 의지해 살아가는 식충이는 아니다. 청소부, 슈퍼마켓 계산원, 패스트푸드 점원 등 평범한 노동자다. 그럼에도 이들은 “더러운 돼지” 취급을 받는다.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과 웨인 루니, 가수 셰릴 콜도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브라고 놀림 받는다. 이 단어는 2008년 옥스퍼드 사전에 정식 등재됐다.

이 믿기 힘든 현상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2011년 출간 즉시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차브-영국식 잉여 유발 사건’이 한국어로 발간됐다. 저자는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노동조합 활동가 오언 존스(30)로 영국인들이 차별적 말을 쏟아내며 하층계급을 공격하는 행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영국 가디언, 미국 뉴욕타임스 등에서 그 해 최고의 정치학 도서로 뽑힌 이 책은 노동자 계급을 악마처럼 묘사하는 사회현상과 그 이면에 깔린 정치적 의도를 파헤친다.

저자는 두 소녀의 실종사건을 토대로 영국사회가 노동계급에 가지고 있는 인식을 드러낸다. 2007년 상류층 여자아이가 실종되자 영국 언론은 2주 만에 1,100여개의 기사를 쏟아냈다. 현상금도 260만파운드가 걸렸다. 정치인들은 노란 리본을 달았고 텔레비전은 사건 발생지인 포르투갈에서 현지 상황을 생중계하는 등 온 나라가 실종아동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됐다. 하지만 2008년 하층민 여아 실종 사건에 대한 기사는 그 3분의 1에 그쳤고 현상금도 2만5,000파운드로 책정했다. 3주 뒤 하층민 아이 실종 사건이 현상금을 노린 엄마의 자작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언론은 “그것 보라”며 “복지금이나 타먹는 하층계급 찌꺼기”라는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무식쟁이 하층계급'을 뜻하는 신조어 차브(chavs)는 영국사회가 노동계급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단어다. 의류 브랜드들은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이들이 주로 구매하는 모델을 단종하기도 했다. 인터넷 블로그ㆍ북인더갭 제공
'무식쟁이 하층계급'을 뜻하는 신조어 차브(chavs)는 영국사회가 노동계급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단어다. 의류 브랜드들은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이들이 주로 구매하는 모델을 단종하기도 했다. 인터넷 블로그ㆍ북인더갭 제공

책은 노동자에 대한 전 사회적 경멸이 대처리즘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1980년대 탈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다수 노동계급을 먹여 살렸던 제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소수가 이익을 독식하는 금융 산업이 득세했다. 그 결과 단단했던 노동계급이 사라지고 비정규 일자리(노동유연화)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계와 언론은 “삶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ㆍ경제적 조건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의지”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란 정치인과 기자들은 노동계급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함에도 가난을 사회 문제가 아닌 무책임한 출산, 의지 박약 등 개인 문제로 치환했다. 여기에 “열심히 노력하면 모두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사탕발림과 “노동계급을 없애고 모두 중산계급이 되자”는 정치구호가 맞물려 노동자 상당수가 노동당이 아닌 보수당에 투표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저자는 결국 노동계급 내부에 정치적 기반을 재건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는다.

영국 사회를 진단했음에도 매 구절이 피부에 와 닿는 책이다. 꼼꼼한 취재와 날카로운 사례 분석 등 르포르타주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나 길거리 노동자를 가리키며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자식을 타이르는 한국 사회가 영국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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