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시진핑, 미중 경쟁에서 중국에 줄세우기 나섰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시진핑, 미중 경쟁에서 중국에 줄세우기 나섰다

입력
2014.11.14 15:58
0 0

동ㆍ남중국해서 일촉즉발 상황까지

인도 방문 때 모디 총리 얼굴 붉혀

美 상대로는 신형대국관계 요구

중국 중심 경제 질서 창조 목표

주변국 묶고 유럽까지 진출 모색

새로운 기금 구상 수백억弗씩 출자

“꽃 한 송이론 봄이 될 수 없고 외기러기론 무리를 이룰 수 없다(一花不是春 孤雁難成行). 우리에겐 태평양을 진정한 태평의 바다, 협력의 바다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일 베이징 교외 옌치후(雁栖湖)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 말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만큼 국가간 협력이 중요하단 이야기다. 대국이 된 만큼 갈등하기보단 포용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중국의 행보는 이 말과는 정반대였다. 대표적인 예가 일방적인 동중국해 방공식별 구역이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한국은 물론 일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동중국해 상공 대부분을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했다. 이 곳을 지나는 항공기가 사전에 중국 외교부나 민간 항공국에 비행 계획을 통보하지 않고 통제에 응하지 않을 땐 무장력을 동원한 긴급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5월에는 중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동중국해 상공에서 일본 정찰기에 중국 전투기 2대가 30m까지 근접 비행하며 위협하는 일도 벌어졌다.

시 주석 취임 후 남중국해 갈등도 더 커졌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80%를 9개의 유(U)자 모양 점선으로 감싼 ‘남중국해 9단선’을 긋고 이 안이 모두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월에는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이 있는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에 축구장 크기의 원유 시추 시설 설치를 강행했다. 이로 인해 중국과 베트남 선박이 서로 충돌전을 벌였으며, 베트남에서는 대규모 반중 시위가 일어났다. 중국은 필리핀과 영유권을 다투는 스프래틀리 군도의 산호초 섬 피어리 크로스에는 활주로와 부두를 갖춘 기지까지 건설하고 있다. 남중국해 중앙에 위치한 이 곳은 중국 하이난(海南)성에서 약 1,000㎞, 베트남과 필리핀에서는 480㎞, 말레이시아에서는 550㎞ 떨어진 전략적 요충지다.

인도와도 국경선 분쟁으로 시끄럽다. 지난 9월 시 주석이 인도를 국빈 방문하기 직전 중국군은 인도 카슈미르 동남부 라다크 지역의 국경선을 침범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시 주석과 정상 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며 얼굴을 붉혔다.

중국은 이처럼 주변국을 향해 힘을 과시하는 한편 미국에는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충돌하지 않고 ▦상호 존중하며 ▦협력하자는 신형대국관계 3원칙을 제시했다. 지난 12일 중미 정상회담에선 신형대국관계 6대 중점 방향까지 제시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국이 선택한 정치 제도와 발전의 길을 미국은 존중해야 하며, 미국의 방식을 중국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상호 존중 아래 양국 관계를 처리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서로 핵심 이익을 손상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 중국 하이난(海南)성에서 동쪽으로 215㎞ 떨어진 남중국해 공해상에서 중국군 전투기가 당시 정찰 업무를 수행 중이던 미군 대잠 초계기에 6m까지 근접한 것은 중국이 말하는 신형대국관계의 실체를 보여준다. 당시 중국 국방부는 미국의 항의에 “중국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근접 정찰이야말로 사건을 촉발하는 근원”이라며 “미국은 중국에 대한 근거리 정찰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관변 학자들은 “중국이 만약 미국 서부 해안까지 비행기를 보내 정찰을 한다면 미국은 가만 있겠느냐”고 거들었다.

시 주석은 국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런 힘의 과시와 함께 경제력을 앞세운 유인책도 쓰고 있다. 바로 일대일로(一帶一路ㆍOne Belt One Road) 구상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경제 협력을 강화한 뒤 이를 유럽까지 연장하겠다는 실크로드경제벨트와 중국-동남아-인도양-유럽 국가를 잇는 해상 교역로를 건설하겠다는 21세기해상실크로드 구상을 내놨다. 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관련국에 기초 시설 등을 건설하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 일체화를 추진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원유ㆍ자원 공급선을 확보하고 미국의 봉쇄도 뚫겠다는 포석이다. 초기 자본금 500억달러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중국이 400억달러를 출자할 실크로드기금 역시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10일(현지시간)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내 수영경기장 '수이리팡'(水立方)에서 베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환영 만찬장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10일(현지시간)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내 수영경기장 '수이리팡'(水立方)에서 베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환영 만찬장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중국은 이와 함께 미국과 일본 중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맞서 중국 주도의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주재하며 FTAAP를 밀어 붙여 결국 FTAAP 추진 개시 결정을 끌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한 외교관은 “중국 지도부는 국력을 배경으로 이제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특히 중국은 미국과 전략적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내 편에 선다면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다른 편에 서서 대리전에 나서는 경우엔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외교적 신호를 계속 내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처럼 힘의 과시를 통해 미국, 일본은 물론이고 주변국들과 동시다발의 충돌을 불사하는 것이 과연 중국의 국익에 도움되느냐는 비판은 중국 내에서도 적지 않다. 2년 넘게 악화일로였던 중일 관계가 최근 APEC을 계기로 급반전 분위기를 맞은 것이나, 지난 12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늦어도 2030년부터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가겠다고 약속한 것 등은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앞으로도 주권과 영토 등 핵심 이익에 대해선 단호한 원칙을 견지하겠지만 주변국에 대해서는 포용 전략으로 퍼주기와 매력공세를 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3일 시 주석을 ‘중국 개혁개방의 새로운 총설계사’로 묘사했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는 덩샤오핑(鄧小平)을 지칭할 때 주로 쓰던 표현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 커버스토리에서 시 주석을 ‘시 황제’로 묘사했다. 표현은 차이가 나지만 중국 안팎에서 한결같이 시 주석을 강력한 1인 통치자로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집단의 견제와 합의를 버리고 1인체제로 재편된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 들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 보다 우려가 앞선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