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하는 나무’
호시노 미치오 지음ㆍ김욱 옮김
찬바람이 분다. 꽃이 진 지는 이미 오래.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이파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공기가 차가워지고 산하가 점점 무채색으로 바뀌는 지금, 황량한 대지의 강인한 이끌림에 여행 욕구가 참기 힘들 정도로 솟구쳐 오른다.
극북(북극과 가까운)의 대자연, 알래스카에 미쳐 살았던 일본인이 있다. 이름은 호시노 미치오(1952~1996). 20여 년을 알래스카에 심취해 살았던 세계적인 야생사진작가이자 수필가다. 그에겐 죽음도 야생이었다. 그는 캄차카 반도로 취재를 갔다가 그만 불곰의 습격을 받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여행하는 나무’는 그가 알래스카에서 겪은 추억들을 편지 쓰듯 기록한 글들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그에게 알래스카 여행은 단순한 탐험이 아닌, 생명에 대한 외경이었으며 인류가 잊고 살아왔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여정이었다.
십대 시절 우연히 도쿄의 헌책방에서 발견한 알래스카의 사진집에 매료된 저자는 그 책에 실린 사진 중 하늘에서 에스키모 마을을 촬영한 사진을 가장 좋아했다. 어떻게 이렇게 척박한 곳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부풀었다. 사진설명에 있는 쉬스마레프란 지명만을 보고 한번 찾아가 보고 싶으니 초대 바란다는 편지를 썼다. 수신 쉬스마레프 촌장님께라 하고. 반 년이 지나 답장이 왔고, 그는 그곳을 찾아가 3개월을 머무르며 첫 인연을 쌓았다.
그리고 20대 중반, 절친한 친구가 조난으로 목숨을 잃자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짧은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이 그를 알래스카로 이끌었다. 그는 시간에 구속 받지 않는 대자연 속에서 자신 또한 죽음이란 속박을 잊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는 알래스카 북극권을 횡단하는 브룩스 산맥의 미답지와 산골짜기를 걸었고, 카약을 타고 글레이셔베이를 횡단하면서 삐걱거리는 빙하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에스키모들과 우미악을 저어 북극해에서 참고래를 쫓아다녔고, 카리부의 계절이동을 따라 여행을 다녔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오로라를 만났고, 때론 굶주린 이리와 마주쳐 식은땀을 흘린 적도 있다. 그러면서 원시 환경에서 인류의 태곳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쌓아 나갔다. “카리부 사슴의 새끼가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설원에서 태어나는 것도, 한 마리의 검은방울새가 영하 60도의 추위 속에서 즐겁게 지저귀는 것도 단지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다. 모든 생명에게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는 강인함이 있다. 또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연약함도 있다.” 그는 생명이 가진 그 연약함 때문에 알래스카를 사랑한다고 적었다.
알래스카의 자연은 생명이 살아가기엔 최악의 조건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최악의 조건에서 사람은 자기 안에 숨겨진 진정한 생명력을 깨닫는다. 그는 알래스카의 거대한 빙하를 보며 살아 있는 생물들의 발길이 끊어진 무기질의 풍경임에도 사람의 마음을 보다 조화롭게 승화시키는 이상한 힘이 간직된 세계라 했다.
사람들에게는 오늘 아침 신문에 무엇이 실려 있었고, 내 친구는 누구이며, 누구에게 빚이 있고, 또 누구에게 얼마의 돈을 빌려줬는가를 잊어버릴 수 있는 신성한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본래의 자아와 미래의 내 모습이 순수하게 투영되고, 이끌어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한 것이다. 그는 창조를 위한 일종의 부화장이라며 극북의 풍경을 노래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유럽의 알프스를 여행하곤 왠지 싱겁다고 했다. 알래스카의 황량한 산들과 비교하면 상자 속에 담겨있는 모형 정원 같다고나 할까.
지금처럼 폐 속까지 찬바람이 느껴질 때면, 거대한 빙하 위에서 숨 쉬었던 알래스카의 공기가 떠오른다. 아! 그 극북의 향기를 다시 맡고 싶다. 태고의 냄새를 흠뻑 들이마시고 싶다. 인간의 손길을 거부한 생명의 약동에 함께 전율하고 싶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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