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ㆍ펠릿 태워 전기 만드는
발전소 현장 점검하니
"목제 대신 왕겨 펠릿 흔적"
환경부ㆍ산림청 등 "예의주시"
지난 6일 오전 11시 30분쯤 한국전력공사 발전자회사의 남부지방 한 발전소 후문으로 목질계 바이오연료 우드펠릿(wood pellet) 납품용 25톤 화물차가 들어왔다. 우드펠릿은 잘게 부순 목재 부산물로, 높은 열과 압력을 가해 균일한 크기로 만든다. 이 발전소는 석탄과 우드펠릿을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혼소설비를 갖추고 있다. 하루에 사용하는 펠릿은 수백톤에 이른다.
하역장에 멈춘 화물차는 뽀얀 먼지와 함께 노란색의 길이 1~3㎝, 지름 0.6~0.7㎝ 크기의 펠릿을 지하 저장시설에 쏟아 부었다. 화물차 기사는 삽을 들고 주변에 떨어진 펠릿들을 긁어 모았다. 30분쯤 뒤 또 다른 화물차가 도착해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펠릿 색깔은 조금 전 쏟아낸 것과 같았다. 화물차 두 대가 하역을 마치는 동안 발전소 직원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하역된 펠릿이 사무실 상자에 보관된 갈색 샘플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펠릿협회 관계자는 “하역한 펠릿은 목재가 아닌 왕겨(벼 껍질)로 만든 펠릿같다”고 말했다.
왕겨는 환경부의 수출입 신고대상 폐기물이다. 병해충을 옮길 수 있어 고온으로 가열해 만든 펠릿만 수입이 가능하지만 수분 함량이 높아 열량이 떨어지고, 재가 많이 나온다. 발전소들은 설비 보호와 효율적 발전을 위해 우드펠릿만 혼소용으로 사용한다. 왕겨펠릿은 발전소들이 열량, 재, 발전효율 등을 감안해 내건 엄격한 입찰 조건을 맞추는 게 불가능하다.
최근 2년 사이 우드펠릿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질 낮고 값 싼 왕겨를 섞은 펠릿이 우드펠릿으로 둔갑해 유통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일고 있다. 이날 혼소발전 현장에서 왕겨펠릿이 사용된 정황이 일부 포착되면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13일 펠릿협회장인 한규성 충북대 교수의 광학현미경 분석결과 하역된 펠릿과 샘플 펠릿은 조직이 달랐다. 하역된 펠릿에서는 줄기가 연한 초본류 구조가 나타났지만, 샘플에서는 목재 조직이 관찰됐다.
펠릿협회가 네덜란드 바이오매스 전문 테스트기관(TLR)에 의뢰환 유전자(DNA) 검사에서도 벼 성분이 검출됐다. 한 교수는 “왕겨펠릿을 우드펠릿으로 납품했다면 업계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라며 “발전소에만 맡겨 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유통ㆍ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발전소 측은 혼탁한 펠릿업계에서 음해성 제보가 난무하고, 민간 협회의 분석은 공신력이 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발전소 관계자는 “공인기관의 검사결과가 아니라 수용할 수 없지만 의심 되는 부분에 대해 내부적으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발전소 측은 외부기관에 DNA 검사도 의뢰했다.
우드펠릿을 관리하는 산림청, 폐기물 소관부처인 환경부 등도 이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즉시 연소되는 펠릿의 특성상 상품을 교체하면 현장 증거를 잡기 힘들어도 왕겨펠릿이 발전소에서 사용된 게 공식적으로 확인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산림청이 2009년 사업화를 시작한 우드펠릿 수입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한전 발전자회사들이 신ㆍ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주요 수요자로 부상한 2012년 말부터다. 대부분 발전소에서 소비되는 펠릿 수입량은 2011년 3만톤 규모에서 지난해 48만톤으로 늘었고, 올해는 8월에 벌써 100만톤을 돌파했다. 우드펠릿 수입시장은 대기업을 비롯해 중소기업들도 뛰어들며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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