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자들 한파 속 고개 떨궈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동민(40)씨는 정리해고 이후 6년 간 아빠 노릇을 하지 못한 점이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다. 그래서 대법원으로부터 해고 무효 판결을 받으면 열두 살, 열 살, 여섯 살 세 아이에게 “아빠가 이겼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13일 대법원은 서울고법으로 ‘쌍용차 사태’를 돌려보냈다. 한파주의보가 닥친 날 고씨는 법정에서 칼바람을 맞았다.
대법원 선고 직후 고씨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주부터 7일간 매일 2,000배를 올렸던 곳. 위로를 받으며 쓴웃음을 지은 고씨의 뺨에는 눈물 자욱이 선명했다.
고씨는 투쟁 기간만큼인 6년 동안 쌍용차에서 일했다. 쌍용차는 그에게 ‘꿈의 직장’이었다. 전에는 마트에서 하루 14시간 일하고 120만원을 손에 쥐었으나 쌍용차에서는 8시간 근무하고 200만원을 받으니 신기하더라고 했다. 쌍용차 입사 이후 둘째를 낳았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릴 수 있게 됐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지만 그는 2010년 2월 6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출소했다. 2009년 4월 자신과 동료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한 회사측과 강경진압에 나선 경찰에 맞선 대가를 치른 것이다. 출소 뒤에는 생계를 위해 우유배달과 찜질방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씨는 “아이들 만나기 전에 소주 한잔 해야겠다”며 버스에 올랐다.
이날 오후 대법원 2호 법정. 쌍용차 해고무효확인소송 상고심 사건번호가 언급되더니 10초만에 ‘파기 환송’ 판결이 내려졌다. 법정에 흩어져 앉아있던 정리해고자들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해고자 이창근(41)씨는 “너무 충격적”이라며 “쌍용차 해고자를 비롯해 노동자 2,000만명에게 비수를 꽂은 판결”이라고 말했다. 승소할 경우 마트 직원들의 정리해고를 그린 영화 ‘카트’를 단체관람하며 축하잔치를 열겠다던 그의 계획은 끝내 틀어졌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도 법정을 빠져 나와 한동안 눈물을 훔쳤다. 징계해고자, 비정규직 해고자 동료들이 따라 울었다. 김 지부장은 “대법원의 판결은 (자본에) 기울 대로 기운 판결로, 비통하고 비참하다”고 말했다.
해고된 이후 줄곧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출근 투쟁’을 벌여온 김성민씨는 “해고 뒤 시민단체 등의 후원금으로 생활했지만 이마저 바닥난 상황”이라며 “결혼하지 않아 부양 의무가 덜하지만, 노모가 오늘 판결 소식을 속속들이 알게 될까 걱정된다”고 울먹였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 “사측 일방의 필요에 의해 기업과 국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정리해고에 제동을 걸어할 상황에서 돌이킬 수 없는 이 모든 비극과 희생을 출발점으로 다시 돌려보낸 대법원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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