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죽음이 한달 넘게 내 속에 살아있다. 피붙이도, 지인도 아닌 남의 아내의 부음(訃音)이 자꾸 삶을 묻는다. 답을 알 수 없어 답답하고, 알더라도 속 시원히 내뱉을 수 없어 갑갑하다.
생전에 그와 일면식만 있다. 구겨진 잠바가 가려준 길고 깡마른 몸에 아기 둘이 매달려 있었다. 나 역시 아이가 아파 병원 대기실에 있었다. 그의 육성을 들은 시간은 기껏해야 5분 남짓. 소소한 일상을 빼면 알맹이는 “육아휴직을 하고 싶다” “빚 갚느라 너무 힘들다” 정도였다. 그저 누구나 하는 고민이라고 흘려 들었다.
얼마 뒤 그는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 앞에서 숨졌다. 출입 차단기가 작동하지 않아 잠시 차에서 내렸고, 급한 경사를 따라 저절로 후진하던 차를 급히 몸으로 막다가 넘어진 게 그의 마지막 순간이다. 차단기, 급경사, 부주의 등 사건의 단서들을 버무려도 설명할 수 없는 허망한 죽음이다.
그의 부고 기사를 써내려 간다. ‘전문직 OOO씨가 O일 별세했다. 향년 35세. 고인은 A 명문대를 졸업하고 직장에서도 주요 보직을 맡았다. 서울에 집도 장만했다. 유족은 남편과 다섯 살, 세 살배기 1남1녀.’
이른 죽음을 제외하면 그의 삶은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인다. 입시전쟁에서 승리했고, 일터에서 실력을 인정받은데다, 아파트 전세를 얻으려면 맞벌이 부부가 28년간 돈을 모아야 한다는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를 샀다. 게다가 합계출산율 1.187명인 국가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으니 ‘슈퍼 맘’(super mom)이라 불릴만하다.
지인들과 생전 고인의 생각은 달랐다. “변변한 옷 한 벌 사 입지 못했고” “육아휴직은 상사가 못하게 했고”(지인들) “빚을 내 산 집은 고통”(고인)이었다. 고인은 입버릇처럼 “아이 둘과 부대끼는 주말 한나절이 몸은 피곤해도 가장 행복하다”고 했단다. 고인의 표면적 성취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아이들과의 관계를 미뤘다가 주말 짬의 행복마저 영영 잃어버린, 많은 것의 희생 위에 세운 사상누각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어떤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정부, 그도 모자라 대선 공약이던 국민의 행복이 원초적인 경제 살리기로 치환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출산율 저하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다고 떠드는 구호만 난무할 뿐 대책은 사실상 실속이 없다. (정부 대책을 기획재정부의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라)
육아휴직 비율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정부의 자찬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임신 및 출산을 이유로 인사상 차별을 가하거나 언어적 폭력을 행사하는 마타하라(maternity harassment)가 외신에 등장하는 일본만의 얘기가 아님을 알 사람들은 다 안다.
급기야 이 나라가 언제 다른 나라보다 더한 복지천국이었던 듯, 알량한 혜택을 놓고 합리적 해결은커녕 편을 갈라 이전투구다. 작년 1년간 가뭄의 단비마냥 월급 직전 다달이 나온 양육수당 10만원으로 살림 구멍을 막았던 나는, “이게 복지의 맛” 운운했던 당시의 유치한 기대를 이제 접는다. 누리과정(3~5세 보육 지원)에 속한 남매를 둔 고인의 배신감은 아마 더했을 것이다.
맞벌이 엄마의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되살려낸다. 삼형제를 키운 B는 10년여의 경력단절을 딛고 비정규직으로 취업해 마트에서 물건을 팔았다. 실적우수상을 받을 만큼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1순위로 해고됐다. 그는 찬장에 진열했던 상패를 옷장 구석에 처넣고 지리산으로 여행을 갔다. 그렇게 떠난 내 어머니 B는 아들의 부재중 전화번호가 찍힌 휴대폰만 남겨둔 채 10년이 넘도록 집에 오지 않고 있다.
단언컨대 그 긴 세월, 600만 비정규직의 처지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임금 등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노동3권 얘기라도 꺼낼 수 있는 노동조합 가입비율은 3.1%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문제만큼은 해결하겠다”던 최경환 부총리는 부동산 활성화 같은 대증요법에 매달리다가 되레 “죽을 지경”이라고 호소한다.
그 사이 맞벌이 엄마가 죽고, 비정규직이 죽고, 해고 노동자가 죽고, 경비원이 죽고, 우리 아이들이 죽어간다. 그러므로 행복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말라. 참척(慘慽)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부모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대통령은 더더욱.
고찬유 경제부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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